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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본질은 생활속 樂 발견”

입력 2005.11.06 17:50

일제 수탈기에는 말할 것도 없고 6·25 한국전쟁 이후까지도 삶의 큰 줄기는 ‘먹는 것’의 해결이었다. 당장 먹고 살 것이 없어 헤매던 시절이었다. 오죽하면 당시 인사가 ‘식사하셨습니까’였을까. 심지어 할머니들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배 꺼진다’며 뛰노는 것조차 말리셨다. 아직까지 체육활동 즉 스포츠란 개념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전 ‘그때 그시절’의 일이다. 불과 50년 후인 오늘날에는 조깅뿐 아니라 웰빙 개념의 스포츠가 폭넓게 퍼져 생활로 자리잡고 있다. 이 엄청난 변화의 물꼬를 튼 선구자는 누구였을까. 물어 물어 찾아간 이가 바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생활체육위원이자 한국올림픽 아카데미 회장인 장주호 박사(68)다. 그는 전후(戰後) 서울YMCA를 통해 이 땅에 생활체육을 보급한, 시민스포츠의 산증인이다.

한때 스포츠는 이 땅에서 사치였다. 축구공이 없어 돼지 오줌통으로 공을 만들어 찼다는 얘기는 접어놓고 1970년대만해도 테니스는 사치스러운 운동이었다. 스포츠의 역사를 따져보면 세상 참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요즘은 은행예금통장 수십개 가진 자가 부자가 아니라 ‘건강한 몸’이 ‘진짜 부자’로 대접받는다. 갖은 병치레해가며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화두가 됐다. 웰빙 개념의 사회체육이 생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박사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접할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가 처음으로 실내스포츠로 수영 강습을 열었을 때 신청자는 고작 2~3명이었다. 이제는 조금만 늦어도 회원 신청을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지만. 장박사는 1960년대 에어로빅운동의 창안자인 쿠퍼 박사를 서울로 초청, 이 땅에 에어로빅을 처음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사회체육전문단체인 서울 둔촌동의 한국사회체육센터를 설립, 전국 지역별 사회체육조직의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가 걸어온 길이 우리나라 사회체육의 개척사라고 할 수 있다.

“제 인생을 바꾼 것이 스포츠예요. 유도와 서울 종로에 있는 YMCA가 오늘날 저를 있게 만들었지요.”

고교때부터 유도를 한 장박사는 그 덕분에 1961년 호주 시드니사범대학에 유학을 갈 수 있었다. 또 시드니사범대학 유학 중 미국 스프링필드대학 교수를 만나는 인연으로 미국 유학까지 갈 수 있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에서 본격적인 생활체육 지도자 양성교육을 받았으니 유도선수, 사범에서 체육지도자로 변신하게 되었다. 그 당시 유학은 집안이 아주 부유하지 않으면 힘들었다. 또 유학을 가도 궁핍한 생활에 허덕이는 것이 예사였다. 그러나 그는 비교적 편하게 유학생활을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체육관에 나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유도를 가르쳤는데 인기가 대단했다. 체육관에 나간 첫날 덩치가 2배쯤 되는 그 체육관의 사범과 대련을 하게 되었는데 그 사범을 몇차례 매트에 내쳐버리자 순식간에 소문이 나 제자(?)들이 줄을 이은 것이다. 당시 10달러면 1주일치 장을 볼 수 있었는데 한번 강습에 40~50달러씩 벌었다고 하니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지 짐작이 간다. 마치 먼 옛날을 회상하듯 멀리 하늘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이 모든 게 YMCA 활동을 통해 이뤄졌다”며 인터뷰 내내 YMCA를 강조했다.

YMCA는 한국전쟁전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실내체육관을 둔 단체였다. 장박사는 한국전쟁때 옛 YMCA 건물이 불타 잿더미가 되고 현재 종로의 YMCA 건물을 지을 때부터 YMCA에 참여했다. 그는 우리나라 근대 스포츠의 도입은 거의 모두 YMCA를 통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장박사는 YMCA 체육부장으로 재임할 당시 체육유치원을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단계별로 스포츠를 가르치는 ‘계단식 프로그램’을 수영 등에 접목해 가르치기도 했다. 60년대 중반 처음으로 개설한 ‘어머니 미용 체조교실’은 당시 장안의 화제였다. 처음엔 짧은 바지를 입고 운동한다니까 쭈뼛쭈뼛하던 주부들이 규칙적인 운동을 하니 살빼기에도 효과가 있다고 소문나자 너도 나도 몰려와 등록하려고 줄까지 서기도 했다는 것이다.

“66년 이상백 박사가 올림픽위원장 할 때였지요. 제가 그때 YMCA 체육부장이었는데 올림픽 지도자 양성교육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 장기영 부총리에게 저를 소개해 주었어요. 장부총리는 안 그래도 한국올림픽지도자 양성을 위해 보내려고 했는데 잘 됐다며 격려해주셨지요.”

그는 올림픽의 본고장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4주간 올림픽지도자 양성교육을 받았는데 이것이 올림픽위원회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됐다.

아직도 체육인의 가슴에 신화처럼 남아있는 88서울올림픽. 그는 당시 대회조직위원회 사무차장을 맡아 크고 작은 실무를 도맡아 하며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렀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서울올림픽만큼 올림픽정신을 제대로 살린 대회가 없었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 한편 최근의 스포츠계의 분위기에 대해선 남다른 우려도 안고 있었다.

“요즘 스포츠는 너무 승부에 집착해요. 올림픽에서도 기술과 메달 개수에만 관심을 쏟아요. 스포츠의 본질은 그게 아니에요. 도덕적 가치를 존중하고 생활속에서 즐기는 데 의의가 있는 거예요.”

그는 생활스포츠 보급과 올림픽정신의 생활화뿐만 아니라 스포츠와 과학, 즉 스포츠연구에도 일관된 행보를 보였다. 81년부터 2002년까지 경희대 체육과학대학에서 교수로 지낸 그는 운동만 잘하면 만사인 풍토에 대해서도 혀를 찼다.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가장 좋지 않은 풍토가 공부를 안해도 스포츠만 잘 하면 그냥 넘어가는 거예요. 유도선수의 경우 미국은 B학점 이상 따지 않으면 출전 자격을 주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수업을 빼먹고 운동에만 전념하게 하지요. 이젠 그런 풍토를 개선할 때가 되었어요.”

장박사는 사회 전반적으로 엘리트 체육에 앞서 시민 전체가 즐길 수 있는 생활 체육이 뿌리내리는 것이 국가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스포츠의 페어플레이정신을 국민운동으로 벌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만 발전하면 뭐 하나요. 국민들의 의식도 선진화되어야지요. 그 바탕이 되는 것이 바로 건강입니다.”

그는 생활체육에도 인권의 개념이 들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들은 건강유지를 위해 운동에 참여할 권리가 있으며 정부는 지원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현대의 올림피즘이라는 것이다.

“요즘 주택법은 일정 규모의 아파트 단지내 반드시 체육시설을 두도록 의무화하고 있지요. 그것도 같은 개념이에요. 일찍이 독일에서는 의사가 약보다 운동을 처방해요. 그 처방전을 들고 체육관에 가면 강습비 등이 보험으로 해결되도록 되어 있어요.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는 정부가 일반 국민의 운동을 위한 경비를 지원하지요. 운동을 하지 않아 비만해지면 병에 걸릴 우려가 크고 결국 건강보험의 부담은 정부가 지기 때문에 사전에 사회비용을 절감하자는 취지예요.”

동네마다 체육시설이 들어섰지만 장박사는 아직도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이제는 양보다 질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스포츠가 보약’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운동을 생활화하는 양상이었다면 앞으로는 정부가 나서 국민건강을 챙기는 생활체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 운동을 생활화해온 장박사는 요즘도 아침 저녁으로 한시간씩 걷기를 한다.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그는 “요즘도 의자를 잡고 팔굽혀펴기 하면 100개는 너끈히 한다” 며 ‘건강한 노년’을 자랑했다.

〈인터뷰/이동형 매거진X 부장·사진 권호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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