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두 여인이 경쾌하게 걸어오는 작품을 담은 이용덕 작가(서울대 미대 교수)의 조각전시회 포스터가 23일 베이징의 왕푸징 거리에 위치한 베이징 유일의 국립현대미술관인 중국미술관 입구에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중국현대미술의 자존심인 중국미술관에서 한국작가의 대관전이 아닌 초대전을 여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23일 오후 3시 개막식을 가진 ‘이용덕-그림자의 깊이’전은 중국미술관 펑 위안 관장(중국미술가협회 부주석)의 전폭적 지원으로 한국의 표갤러리(대표 표미선)와 함께 여는 초대전이었다.
평소 외국작가의 전시회에 나오는 일이 거의 없다는 펑 관장은 축사를 자청해 우연히 외국의 아트페어에서 보고 팬이 된 이작가의 전시회를 축하했다.
“정말 독특한 작품입니다. 푹 팬 음각이면서도 볼록 튀어나온 듯한 양각의 효과를 내는 ‘네거티브 조각’ 작품은 음과 양, 허와 실이라는 동양적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조각의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매우 창조적 작품입니다.”
전시장에서는 그의 ‘네거티브 조각’과 함께 입체조각, 그리고 독특한 ‘그림자 조각’ 등 모두 40여점이 전시되고 있었다. 입체감과 동적인 효과가 있는 ‘네거티브 조각’은 사진으로 보면 별다를 것 없는 부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움푹 들어간 네거티브 조각이다. 채색을 가미한 조각은 관람자가 보는 방향에 따라 조각의 시선과 동작이 함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동적인 홀로그램적 효과도 연출된다.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석고 주물을 뜬 후에 그것을 평평한 석고판 위에다 놓고 원래의 주물을 제거하면 이렇게 푹 팬 음각의 네거티브 조각이 됩니다. 관람객들은 조각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부분은 주물이 제거된 ‘없는’ 상태입니다. 또 푹 팼지만 보시다시피 착시현상으로 인해 볼록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음과 양, 허와 실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불교적 사상과도 자연스럽게 접점을 이룬다.
그렇다면 ‘허물벗기’라는 제목의 설치 작품은 노장사상과 닿아있다. 이 작품은 네거티브 조각과 일맥상통하면서도 매우 기발한, 일명 ‘그림자 조각’이다. 캄캄한 천막 속으로 관람객이 들어가면 3분마다 빛이 비춰지고 벽에 칠해진 축광안료 때문에 관람객들의 모습이 벽에 순간적 그림자로 남아 약 3분간 지속된다. 작가는 벽 중앙에 그림자처럼 새겨진 나비를 가리키며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내가 된 것인지 모른다는 장자처럼 순간의 반영일 뿐인 그림자가 우리인지 아닌지 묻고 싶었다”면서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고 덧붙였다.
이 전시회를 중국미술관과 공동주최하는 표미선 표 갤러리 대표는 “내년 3월 마카오 미술관에서 초청전을 하고 나서 9월에는 상하이 다롄미술관에서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면서 크리스티 등 해외 유명경매장에서도 이작가의 작품은 해마다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시는 내달 14일까지 열린다.
〈베이징|이무경기자 lm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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