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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에 나타난 개, 재앙막고 행복 지키는 충복

입력 2005.12.30 17:08

  • 조운찬 논설위원

2006년은 병술년 개띠 해. 12지신의 열 한번째인 동물신인 개는 시간으로는 오후 7~9시, 방향으로는 서북서를 지키는 시간신이자 방위신이다. 성질이 온순하고 영리하여 예로부터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역사와 민속 속에 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국립민속박물관 천진기 민속연구과장의 도움말로 알아본다.|편집자

어유봉의 ‘앉은개’(狗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어유봉은 삽살개를 특히 잘 그렸는데, 긴 털을 세필로 섬세히 묘사한 개 그림에서는 위엄뿐 아니라 신령스러움까지 배어난다.

어유봉의 ‘앉은개’(狗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어유봉은 삽살개를 특히 잘 그렸는데, 긴 털을 세필로 섬세히 묘사한 개 그림에서는 위엄뿐 아니라 신령스러움까지 배어난다.

인간이 개와 함께 한 역사는 수천년 전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에서는 하, 상, 주 시대 이미 잡귀를 쫓기 위해 관 아래에 개를 묻는 풍습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삼동 패총유적에서 개의 머리뼈가 발견되었다.

동양에서 개에 관한 기록이 처음 보이는 곳은 ‘서경’이다. 3,000년 전에 쓰인 ‘서경’의 여오(旅獒)편에는 “주나라 문왕이 상나라를 쳐부수니 여(旅) 땅의 오랑캐들이 개(獒)를 공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때의 개는 삽살개나 풍산개처럼 여 땅의 특산으로 몸집이 큰 개이다. 주인을 구한 개로 유명한 전북 오수(獒樹)의 지명에 ‘큰개 오’자를 쓴 것은 당시 개가 보통 개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중국 역사서 ‘후한서’나 ‘삼국지’의 동이전에는 부여의 관직으로 ‘마가’ ‘우가’ 등과 함께 ‘구가’(狗加)가 보인다. 또 ‘삼국사기’ 고구려조에도 ‘유화부인이 낳은 알을 개에게 주었는데 먹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모두 2,000년 전 한반도에 이미 개의 사육이 일반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문헌뿐 아니라 고분 출토품, 고분 벽화, 십이지신상, 신라 토우 등에도 개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개는 주인과 타인을 구별하는 판단력이 있을 뿐 아니라 주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충성스러운 동물이다. 그러나 항상 사람 주변에 맴돌다 보니 구박이나 천대를 받기도 한다.

민속에서 개는 ‘충복’(忠僕)과 ‘비천’(卑賤)의 양면성을 띤다. 들불을 꺼서 주인을 구했다는 오수의 개이야기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 전해오는 수많은 의견설화, 개무덤은 모두 충복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이승에서 삶의 동반자인 개는 무속신화에서 사람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안내자로 그려지기도 한다. 무속 신화의 하나인 제주도 차사본풀이는 염라대왕을 만난 사람이 하얀 강아지의 안내를 받으며 이승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암의 화조묘구도

이암의 화조묘구도

그러나 민요, 속담, 수수께끼 등에 보이는 개는 비천함의 대명사로 그려진다. 개살구, 개맨드라미 등 이름 앞에 ‘개’가 붙으면 비천하고 격이 낮은 사물로 떨어진다. ‘개소리’는 말도 안되는 얘기이고, ‘사위 자식 개자식’은 사위를 자식 축에 끼어넣을 수 없다는 뜻이다. ‘개팔자가 상팔자’는 비천한 개만도 못한 인생을 얘기할 때 쓰는 속담이다. ‘개판’ ‘개망나니’ ‘개꿈’ ‘개수작’처럼 속어에 ‘개’자가 많이 들어가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개가 어느 동물보다도 인간의 사랑을 받아온 것은 재앙을 물리치고 집안의 행복을 지키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부터 개는 집지키기뿐 아니라 사냥, 시각장애인 안내,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 특히 흰개는 전염병·잡귀를 물리칠 뿐 아니라 집안에 좋을 일을 가져온다 해서 사랑을 받았으며, 누렁이는 풍년과 다산의 상징으로 농가에서 많이 길렀다.

개 그림 가운데에서 이암의 ‘화조구자도’처럼 개가 나무 아래에 있는 장면은 도둑을 막아 집을 잘 지킴을 상징한다. 개를 뜻하는 ‘술’(戌) 자가 ‘지킬 수’(戍, 守)를 연상케 하고 戍와 守는 나무 수(樹)와 음이 같기 때문이다.

개고기가 보양식으로 널리 사용되어온 것은 음양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하루 가운데 술시(오후 7~9시)에 양기가 가장 높은 것처럼 개에게도 양기가 셀 것이라고 본 것이다. 전통 향음주례에서 개고기가 가장 귀한 음식으로 사용되고 삼복 때 개고기를 즐겨 먹은 것은 원기를 보충하는데 개만한 음식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는 “개고기가 위장을 튼튼히 하며 양기를 북돋운다”고 씌어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여름에 개고기를 삶아서 먹는 것을 ‘가장’(家獐)으로 불렀다”는 내용이 전한 것을 보면 개고기를 먹는 일은 꽤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운찬기자 sid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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