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회공헌을 둘러싸고 재계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검찰의 현대·기아자동차 비자금 수사와 참여연대의 편법 증여 실태 보고서 발표를 계기로 재계의 압박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삼성그룹이 각 분야별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속속 내놓고 있는 데다 현대·기아차가 이에 호응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다른 대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는 것.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현대차와 다른 기업은 경우가 다르지 않느냐”면서도 “그렇다고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어 죽을 맛”이라고 토로했다.
-삼성이 ‘잣대’가 된 격-
◇주도하는 삼성=삼성그룹의 후속 사회공헌 프로그램 마련은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이건희 회장 일가의 8천억원 사회 헌납과 서민들의 무료 변론을 위한 무료법률봉사단을 발족시킨 데 이어 14일에는 그룹 차원의 조직적 사회봉사활동을 진두지휘할 사회봉사단이 공식 발족한다. 삼성 이해진 사회봉사단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향후 그룹 차원의 봉사활동 구상을 밝힐 예정이다. 각 계열사별 특징에 맞는 맞춤형 사회봉사활동 프로그램 도입과 임직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높이기 위한 자원봉사 마일리지 및 자원봉사 인증제와 같은 대책도 담겨 있다. 또 현재 30여명 수준인 사회복지사를 대폭 확충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
삼성은 사회공헌 3단계 프로그램으로 대·중소기업 상생경영을 위한 중소기업 지원책도 마련중이다. 다음달 중 획기적인 지원책을 내놓기 위해 현재 각 계열사별로 지원방안을 수집중이다. 중소기업의 판로 지원을 위해 연면적 수만평 규모의 중소기업제품 전시장 건립이나 그룹 계열사의 고급 설비·기계·계측기를 중소기업에 헐값에 넘겨주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삼성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덜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라며 “계열사별로 지원책을 취합한 뒤 다음달 말쯤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역시 8일 정몽구 회장의 귀국에 맞춰 여론의 추이를 봐 가며 후속조치를 내놓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그룹 수뇌부가 각계 각층의 여론수렴 작업을 펴고 있다.
-“기업활동 장애” 푸념도-
◇부담스러운 재계=삼성의 독주에 재계는 속앓이만 하고 있다.
LG와 SK는 그동안 자체 계획에 따라 각종 사회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여론의 수위는 이를 넘어서고 있다.
대기업 총수일가의 편법 경영권 승계 보고서를 계기로 단순한 사회봉사활동 차원을 넘어 부의 사회환원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는 현대차의 추이를 봐가며 후속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마련키로 입장을 정한 채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 뭘 내놓긴 해야겠지만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는 상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삼성·현대차야 비상장 주식을 이용한 편법 경영권 승계 문제 때문에 검찰수사를 받고 있어 다른 기업과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그러나 삼성이 재계의 ‘잣대’가 되고 있어 어떤 형태로든 모양새를 갖춰야 하는 게 아니냐는 논의를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사회공헌에 대한 ‘압박’이 기업활동의 장애가 되고 있다는 푸념도 들린다.
재계의 고위관계자는 “요즘 최고경영자(CEO)가 주재하는 고위 임원회의마저도 중요한 투자결정이나 사업확장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게 아니라 소나기를 피해가자는 식의 비생산적인 주제에 할애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전경련은 최근 이런 분위기에 맞춰 사회공헌위원회를 열고 나눔경영을 확산키로 했다.
〈박문규·박경은기자 park00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