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들이 ‘사이버 세상’의 나무들을 옮겨 다니며 사람을 조롱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에서 패러디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조삼모사 패러디 시리즈’ 속 원숭이 얘기다. 조삼모사는 올해 1월 초 만화가 고병규씨가 자신의 블로그(www.cyworld.com.com/kbk74)에 고사성어 조삼모사(朝三暮四)를 패러디해 올린 두 컷 만화다. 만화가 인기를 끌면서 네티즌들의 손에 의해 학생버전, 직장인 버전, 군대 버전 등으로 다양하게 재패러디되고 있다.
![[만화]두컷만화 ‘조삼모사 패러디 시리즈’ 열풍](https://img.khan.co.kr/news/2006/06/08/6f0939b.jpg)
#케이스 1=남자가 말한다. “먹이가 부족하니 앞으로 너희들에게 도토리를 아침에는 3개, 저녁에는 4개 주겠다.” 성난 원숭이들이 말도 안된다며 소리 지르자, 남자가 새침하게 돌아서며 말한다. “싫으면 그냥 굶든가.” 당황한 원숭이들이 대답한다. “예전부터 꼭 그렇게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케이스 2=상사로 추정되는 남자가 원숭이들에게 말한다. “오늘 야근이다.” 성난 부하 원숭이들이 약속있다, 우리도 데이트 좀 하자며 반항하자 남자가 새침하게 돌아서며 말한다. “그럼 주말에 나오든가.” 당황한 원숭이들이 대답한다. “저녁시킬까요?”
조삼모사 패러디의 매력은 ‘소심함’과 ‘비굴함’으로 통하는 현대인들의 정서를 짚어주는 데 있다. 야근을 시키는 상사에게 잠깐 저항하다가 이내 꼬리를 내리는 원숭이의 모습은 멋지게 사표를 던지는 만화 속 영웅담(?)과는 거리가 멀다.
회식 때마다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는 안모씨(28)는 조삼모사 회식편을 보고 사장님 앞에서 차력쇼를 했던 생각이 났다. 안씨는 “자존심 세우며 큰소리 치는 직장인이 얼마나 있겠냐”며 “과장되긴 했지만 상황에 맞춰 비굴하게 변하는 모습에 공감이 간다”고 말했다.
소심과 비굴은 연예인 사이에서도 트렌드다. 최고의 MC로 평가받는 유재석은 최근 썰렁한 개그는 바로바로 사과하는 ‘사과방송’을 유행시키고 있다. “친구 따라 갔다 우연히 뽑혔다”는 스타들의 성공스토리도 요즘은 “무명의 설움을 딛고 비굴함도 견뎠다”는 사연이 주를 이룬다.
비굴함을 ‘위트와 지혜’로 보는 이들도 있다. 만화 속에서 혹 떼려다 혹 붙일 상황에 놓인 원숭이들은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고 아이디어까지 제시한다. 회사원 신은정씨(25·여)는 “실생활에서도 책임 못지고 큰소리치는 사람보다는 유머러스하게 분위기를 잘 맞추는 사람이 더 좋다”고 말했다.
조삼모사 시리즈는 원작보다 네티즌들이 만든 후속편들이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단 두 컷의 그림에 상황만 바꿔서 만들면 되기 때문에 아이디어만 있으면 포토숍으로 몇 분만에 뚝딱 만들 수 있다.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박인하 교수는 조삼모사 패러디 유행을 ‘디지털로 업그레이드된 낙서’라고 분석하고 “이미지를 갖고 노는 데 익숙한 디지털 세대들이 인터넷을 통해 사적인 경험담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은교기자 indi@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