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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한국영화 기로에 서다

무분별 투자·제작…흥행률 1할대 곤두박질

입력 2007.03.26 18:22

한국 영화산업이 기로에 서 있다. 1990년대 중반 한국영화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이래 자국영화 점유율이 할리우드를 앞지르는 등 우리 영화는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를 만들어갔다. 지난해까지 1000만 관객 영화가 4편이나 탄생하는 등 한국영화는 성장을 거듭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영화계는 줄잡아 1000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작품별 수익 양극화는 심화됐고 투자 창구는 얼어붙었다. 영화인들은 2007년과 향후 수 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영화계가 장기 적자를 계속할지, 재도약을 맞을지 갈림길에 서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이자 전략적 ‘산업’으로서 우리 영화가 무엇을 반성하고 준비해야 할지 세 차례에 걸쳐 진단한다.

<글싣는 순서>

1. 위기인가, 기회인가
2. 창의와 시스템 ‘두 토끼’
3. 중국을 대비하라

[한국영화 기로에 서다] 무분별 투자·제작…흥행률 1할대 곤두박질

영화계가 추산한 지난해 한국영화 손익계산서는 총 3500억~4000억원 투입에 약 980억원 손실. 개봉작 108편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10여편에 불과하다. 영화인들은 ‘최대 위기’라는 총론에 공감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쌓여온 영화산업에 대한 환상과 성급한 투자로 돈이 몰려 지난해 무분별한 제작을 낳았고, 이것이 개별 작품의 완성도 저하와 수익률 악화로 이어졌다는 지적은 영화계 모두가 동의하는 표면적 원인이다. 제작사들이 작품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우회상장과 이동통신사 등의 투자에 힘입어 덩치만 커지다보니 충무로에 유통되는 돈에 거품이 끼어왔다. 주식시장에서 성과를 보여줘야 했던 일부 제작사들이 시나리오 등 작품 완성도를 다듬지 않은 채 앞다퉈 영화를 내놓으면서 오늘날 위기를 자초했으며 영화계 스스로 이를 반성해야 한다는 점에도 의견이 모이고 있다. 또 영화산업노동조합과 영화제작가협회의 노사 교섭 타결이 임박함에 따라 올해 영화계는 근본적인 체질 개선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올 7월부터 ‘영화판’ 달라진다=영화계가 노사 교섭에 합의하게 되면 1차적으로 제작비 상승을 가져오게 된다. 오는 7월1일부터 정기적 임금지급, 표준노동시간 등이 적용되면 편당 제작비는 1억~1억5000만원 정도 올라갈 전망. 영화노조 최진욱 위원장은 이에 대해 “방만한 제작 관행 등 불합리한 부분에 대한 비용 조정이 이뤄지면 전체 제작비는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간 ‘못 찍으면 밤새우고 비오면 다음날 다시 찍는’ 제작 관행이 앞으로는 비용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에 촬영현장은 더욱 체계적으로 계산된 일정을 갖춰나가 제작비 절감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영화산업 중장기 발전계획에 따라 올 7월부터 극장요금의 3%선에서 발전기금을 모금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어서 이것이 티켓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역시 7월부터 적용될 개정 저작권법은 영화의 불법다운로드 행위를 친고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부가판권시장 정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등 올 7월은 이래저래 한국 영화산업이 재정비되는 기점이 될 전망이다.

◇“자금 선순환 구조 마련을”=편당 평균제작비가 40억원을 웃도는 한국영화는 관객 130만명 이상이 들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한국시장의 크기를 감안했을 때 관객 100만명이면 수익이 나오도록 제작비를 절감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제작사들의 현실 진단이다. 제작가협회 오기민 정책위원장은 “일본의 경우 시장(인구) 규모도 우리의 2배이지만 높은 관람료나 안정적인 부가판권시장 등을 감안할 때 우리 영화의 평균제작비는 일본보다 6배 높다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MK픽처스 심재명 사장은 제작비와 관련, “스타 배우의 개런티 문제뿐 아니라 특급 스태프가 가져가는 임금에도 쏠림현상이 심해 전반적인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작자들은 특히 지속적으로 투자금이 순환되는 금융인프라가 미비한 상황을 문제로 꼽는다. LJ필름 이승재 대표는 “현재 영화계의 금융환경은 우리 영화를 산업이라고 부르기 힘들 만큼 인프라가 보잘 것 없다”며 “산업화의 길로 접어드는 과도기엔 정부가 적극 개입해 자금이 선순환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영상투자자협의회 박경필 회장은 최근 기획예산처 주최 국가재정운용계획 토론회에서 “세계 각국이 영상산업 발전을 위해 세제·금융 지원을 확대하는 추세”라며 “기금운용 전문회사 설립 등 투자 안정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창의성 논의 선행돼야”=한국영화감독조합 김대승 공동대표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의무가 있는 우리가 과연 그렇게 했었나 하는 반성부터 해야 한다”며 “조폭코미디가 잘 된다 하면 그쪽으로 몰려가는 등 영화가 관객보다 뒤처져서 쫓아간 측면이 있었고, 이렇게 되는 한 위기는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감독은 제작비 절감론에 대해 “규모가 크거나 작은 영화가 다양하게 나와야 할 텐데 일률적으로 제작비를 낮추자는 논리가 영화의 창의력을 제한하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비용을 이유로 촬영시간이 무리하게 단축되는 등 마치 공장처럼 돌아간다면 과거 홍콩영화처럼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영화의 최대 경쟁력인 크리에이티브 측면이 훼손돼서는 다른 어떤 노력도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CJ엔터테인먼트 길종철 전략기획실장은 “영화계가 효율적인 자본 집행에 대한 고민을 하기보다 흥행만 생각했던 게 사실”이라며 “영화계에 돈과 영향력이 몰리면서 영화 자체에 창조적인 고민을 기울이기보다 작품 외적인 일에 신경쓰게 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관객에게 좋은 영화를 가져다주기 위해 누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 영화계가 반성할 점이 많다는 지적이다.

〈송형국기자 hank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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