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정신지체 장애인을 돌보기 위해 그와 결혼해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은 수녀지망생이 부모님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혼인무효선고를 받아낸 안타까운 사연이 뒤늦게 드러났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면 생활보호대상자로 보조금을 받을 수 없는 경직된 사회보장시스템이 ‘비극’의 출발이었다.
ㄱ씨(여)가 ㄴ씨를 만난 것은 1995년 한 장애인 보육원. 수녀가 꿈이었던 ㄱ씨는 수녀원을 나와 장애인 보육원에 간호조무사로 들어갔다. 그곳에 수용된 ㄴ씨는 지능지수 23 정도의 1급 중증정신지체 장애인으로 혼자서는 대·소변을 제대로 처리할 수조차 없었다. ㄴ씨는 다른 장애인들로부터 괴롭힘과 폭력을 당했고, 찾아오는 보호자도 없었다. ㄴ씨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 ㄱ씨는 ㄴ씨를 데리고 보육원을 나왔다. 경제적 기반이 없었던 ㄱ씨는 쪽방에서 ㄴ씨와 생활하다 동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했고, 동사무소로부터 ㄴ씨와 혼인신고를 하면 생활보호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1995년 말 혼인신고를 했다.
ㄱ씨는 손바닥을 때려가며 대변 가리기를 가르쳤고 ㄴ씨는 ㄱ씨를 엄마 또는 선생님이라 불렀다.
하지만 ㄱ씨도 언제까지나 ㄴ씨를 돌볼 수만은 없었다. 부모님의 몸이 불편해지자 ㄱ씨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기로 결심, ‘결혼’ 12년 만에 법원에 혼인무효 소송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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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정법원 가사4단독 김영훈 판사는 27일 ㄱ씨가 낸 혼인무효소송에서 “원고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받기 위해 혼인신고를 한 것일 뿐, 정신적, 육체적 결합으로서 부부관계를 성립시키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이영경기자 samemind@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