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기념시설’ 낸 정호기교수-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 광주의 5·18 민주묘지,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 등 전국엔 다양한 역사 기념 시설들이 있다. 일반인들이 이런 공간에 갔을 때 받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감동이 있고 편안하다고 느끼기보다 대개는 접근하기 어렵고 딱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을 것이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이사람]“공원처럼 기념시설을 꾸미자”](https://img.khan.co.kr/news/2007/10/05/7j06k02b.jpg)
정호기 성공회대 연구교수는 국가가 주도해서 생긴 기념사업의 문제점을 분석하면서 이 같은 물음에 답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기념시설’(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역사기념시설을 독립, 한국전쟁, 거창사건, 마산 3·15 의거, 4·19 혁명, 부마민주항쟁 , 5·18 민중항쟁 등의 범주로 나눠 살펴보고 있다. 기억과 기념의 필요성, 기념관 건립운동에 대한 점검, 향후 ‘한국 민주주의 전당’ 건립 방향 등도 다루었다.
정교수는 민주화운동과 각종 과거청산 작업의 기념을 국가기관이 주도하면서 대항문화가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민주화 운동의 희생자와 유족은 자신들의 억울함이 국가의 제도적 틀에서 기념·보상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쉽게 수용한 면도 있었습니다. 관료의 손에 의해 기념사업이 진행되면서 사회운동의 정신은 사라지고 저항 주체도 그 과정에서 빠지게 됐죠. 사회운동이 주장하는 미래의 희망과도 단절돼 버린 겁니다. 사람이 없다보니 결국 국가 대중동원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그 정점이 국가기념식이죠. 사람들을 억지로 동원해서 진행되는 국가 주도의 기념식 말입니다.”
대부분의 기념 시설이 획일적이고 자연친화적이지 않으며, 권위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가는 말 그대로 국가의 입장에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거나,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관점에서 기념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대중 또는 서민의 삶과 정체성이 녹아 있는 역사성이 빠지고 만다. “기념 시설이 꼭 서울 사대문 안에 있어야 될까요? 오히려 운동이 일어난 지역에 세워지는 게 정체성을 살리는 데 맞지 않을까요. 행사가 있을 때만 가는 공간이 아니라 아무때나 생각할 수 있는 공원처럼 만들면 어떨까요. 나무도 많이 심고 의자도 많이 놓고요. 일상적으로 들러 역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말입니다.”
국가가 아닌 시민이 주도하는 기념 공간, 국가가 보고 싶은 관점으로 기념하는 것이 아닌 대중의 삶이 녹아있는 기념물과 시설을 꾸미는 것이 바람직한 기념 시설일 것이라고 정교수는 말한다. ‘국가가 만든 기억’을 ‘사회적 기억’으로 나중에 재구성하는 일은 어려운 만큼, 무턱대고 시설을 세우기 전에 기념 시설 자체에 대해 공론화시키면서 많은 사람이 바라는 모습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기념, 국가동원 방식으로 가면 결과적으로 기념사업업자들을 먹여 살리는 꼴밖에 안됩니다. 기념사업만 따는 거대한 문화사업 자본이 이미 작동하고 있어요. 열심히 투쟁한 결과가 국가와 자본 좋은 일만 시키는 겁니다. 유족은 혜택 조금 받고, 나머지는 손 털고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떠나는 거지요. 이런 상황을 되풀이해서는 안됩니다. 기념 시설은 우리의 시설이고, 내 땀이 들어가고 우리가 공유하고 토론하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이 책은 최근 건립 사업이 가속화되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 전당’이 과거 기념 시설의 한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이론적·실천적 바탕을 제시하기 위해 기획됐다. 체험학습을 위해 기념 시설을 자주 찾는 아이들을 둔 교사와 학부모들이 학습 지도용으로 참고할 만하다.
〈임영주기자 minerv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