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위 동물원 ‘두 번째 노래모음’

김창기(v, g), 유준열(v, b), 박기영(v, key), 박경찬(v, key), 김광석(v, g), 이성우(g)

데뷔작의 성공은 순박한 모범생 같은 청년들로 하여금 9개월 만에 두번째 앨범을 발표할 수 있게 했다. ‘보통사람들의 시대’와 같은 헛구호가 확성기를 타고, ‘88올림픽’이 요란스럽던 때에 보통 청년들이 우리를 대변하는 은은한 노래들을 불렀다. 전업 뮤지션을 지향하지 않은 그들은 나중에 ‘의사선생님’이나 ‘교수님’이 되었지만 음악이 서툴진 않았다. 오히려 기존의 대중음악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대표곡을 거의 손수 만든 김창기는 앞서 임지훈의 ‘사랑의 썰물’과 같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곡가였고, 박기영과 유준열 역시 진지한 태도로 음악에 임했으며, 목소리로 참여한 김광석은 말할 나위 없이 타고난 노래꾼이었다.

[대중음악 100대 명반]43위 동물원 ‘두 번째 노래모음’

지금도 배낭을 메고 운동화를 신는 김창기는 영민한 작사가이기도 했다. ‘동물원 1집’(88)의 ‘거리에서’에서 “거리에 가로등 불이 하나둘씩 켜지고”와 같은 표현으로 임팩트를 줬던 기법은 2집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에서도 성공한다.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처럼 손에 잡힐 듯한 이미지를 펼쳐놓는다.

또 많은 이들의 가슴을 무너뜨리거나 포근하게 보듬는 그의 서정성 안에는 상실과 체념의 정서가 짙게 배어있다. 추억서린 옛 동네로 데려가 옛 친구를 만나게 해주는 ‘혜화동’은 장소와 사람으로 매듭지어져 있다. 이 매듭에 지하철과 옛사랑을 엮이게 한 노래가 ‘동물원 3집’(90)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이다.

유준열의 낭만적인 감수성과 박기영의 음악가적 센스가 더해져 동물원은 따스하고 정감 있는 얼굴빛을 드러냈고, ‘새장 속의 친구’와 ‘길 잃은 아이처럼’ ‘별빛 가득한 밤에’을 통해 다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집집마다 통기타가 있던 시절, 포크-팝의 양식으로 사람들이 따라부를 수 있는 노래와 겸손한 연주를 담았고, ‘동물원 2집’은 그들의 등장과 다음 행보 사이에 근사하게 꽂힌 깃발이 되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거나 소란스럽게 꾸며내지 않고도 감동을 주고 사랑받을 수 있음을 확인시키며 대중음악의 스펙트럼을 넓게 펼쳐보였다.

동물원은 단단히 짜인 밴드와 연마된 가수들과는 달리 느슨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일상적인 소재와 섬세한 표현을 찾아냄으로써 긴 시간이 흘러도 불릴 음악을 낳았다. 선명하지 않은 흐릿함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건 힘든 일이다. 하지 못한 말, 먼지처럼 사라질 기억, 그러한 망각과 소멸을 담담하고 겸손하게 스케치해 낸 동물원. 애써 물어도 답을 듣지 못할 때가 있고 묻지 않아도 답을 들어야 할 때가 있듯이, 어쩌면 삶은 희미한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일는지 모른다. ‘혜화동’에서 속삭이듯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나도원|웹진 가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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