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틀어박혀 ‘인터넷 생활’ 40대 남자
부친 회사 간부 흉기로 찌른 뒤 도주
집안에만 혼자 틀어박혀 지내던 이른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형 살인이 국내에서도 일어났다. 경찰은 친구나 지인이 없는 외톨이의 특성 때문에 범인 추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지난달 24일 낮 12시30분쯤 성북구 돈암동의 한 출판업체에서 직원 권모씨(57)를 살해하고 달아난 임모씨(40)에 대해 살인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수배 중이라고 1일 밝혔다. 임씨는 자신의 아버지(88)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영업부장으로 재직하던 권씨의 목을 수차례 칼로 찔러 숨지게 하고 도주했다.
경찰은 신고 직후 임씨 가족의 진술과 물증 등을 통해 임씨의 신병 확보에 나섰으나 임씨의 행방을 쫓을 만한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담당 경찰은 “김씨는 마흔이나 됐지만 결혼을 하지 않고 친구도 전혀 없으며 휴대전화는 물론 통장이나 신용카드 한번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임씨는 범행 후 움직이는 흔적을 일절 노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임씨가 고교 졸업후 줄곧 자신의 방 안에만 틀어박혀 살아왔다고 전했다. 하루 종일 인터넷을 뒤지며 만화영화 등을 내려받아 보는 것이 활동의 전부였고 취업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부모와 함께 살았지만 식사도 같이 하지 않고 방 밖으로 거의 나오지도 않았다. 낮에는 자고 밤에 움직이는 일이 많았던 임씨는 5년 전에는 우울증을 겪다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
임씨의 아버지가 “일이라도 거들라”며 자신의 출판사에 나오도록 했고, 영업부장인 피해자 권씨가 임씨 일을 챙기며 상대했다. 그러나 임씨는 회사에서도 다른 사람의 신발을 감추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이다 2개월여 만에 일을 그만뒀다.
경찰은 “임씨가 권씨에게 개인적으로 불만을 품었다가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범행 현장에서는 임씨가 범행 전부터 가지고 다니던 신문지로 만든 칼집 등이 발견됐다.
임씨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던 아이가 점점 더 외톨이가 돼 갔다”며 “내가 잘못 가르친 죄”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지난달 23일 도쿄 인근 이바라키현 쓰치우라시역 대로에서 가나가와 마사히로(24·무직)가 행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히키코모리형 범죄가 발생, 일본 사회 전체가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히키코모리
‘틀어박히다’라는 뜻의 일본어 ‘히키코모루’의 명사형. 통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가족과 대화도 거의 하지 않으며 자기혐오, 우울증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 인터넷과 게임에 몰두하면서 현실과 가상세계를 착각, 폭력적인 성향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본 NHK 복지네트워크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히키코모리는 160만명가량이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 넓은 의미의 히키코모리를 포함하면 300만명 이상일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970년대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90년대 중반 이후 사회문제화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