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추억은 은어처럼 강을 거슬러 올랐다

최성각 |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덕장의 비릿한 물내음 속 나의 유년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오염되지 않은 동해에 거대한 정어리떼가 지나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매년 떨어지기 일쑤였지만 신춘문예를 준비하던 2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고향의 천변에 덕장을 만들어 말리던 고기는 그렇지만 정어리가 아니라 명태나 양미리였다. 덕장이란 건축물을 올릴 때 쓰던 비계 같은 가느다랗고 길지만 튼튼한 낙엽송이었는데, 겨울 물고기를 걸어 말리던 그 나무를 고향에서는 ‘얼룩’이라 불렀다. 정어리떼는 내가 태어난 이후로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내 고향은 바람이 무섭게 내리치던 백두대간 아래 바닷가에 엎드려 있던 고도(古都)였기에 명실상부하게 ‘강’이라 말할 만한 유장한 물길은 없었다. 그래서 강 이름도 그냥 흔해빠진 ‘남대천’일 뿐이다. 백두대간에서부터 동쪽으로 흘러내려 시를 관통해 바다로 흐르던 남대천의 길이는 30㎞쯤 될까. 내 유년의 강은 어쨌거나 나의 추억이 감당할 만큼의 적당한 길이와 수량을 담고 있다. 그 강에 얽힌 내 첫번째 기억이 왜 전쟁이 끝난 얼마 뒤, 아버지가 겨울철에 천변에 세웠던 덕장이었을까, 모르겠다. 지금은 그들 모두, 지상에서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릴레이 에세이 강을 말한다]⑧추억은 은어처럼 강을 거슬러 올랐다

밤이면 가족 모두 돌아가면서 그을음이 많이 나던 남폿불을 들고 남대천에 나가 덕장을 지켰다. 그때는 전후라 다리 밑에 가마때기로 움막을 짓고 사는 거지들도 많았다. 그들에게 덕장의 고기들은 귀한 별미였을 것이다. 비슷하게 가난했기에 적당히 나눠 먹고 살던 훈훈한 시절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덕장을 안 지킬 수는 없었다. 우리 집은 당시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대가족이었다. 형들을 따라 덕장에 나갔던 날, 덕장을 지키는 것은 잠시, 추위를 이기기 위해 천변의 돌멩이로 화로를 만든 뒤, 새끼줄에 묶인 양미리를 표 안 나게 풀어내 구워 먹던 맛은 잊을 수 없다. 어린 두 손바닥에 올려진 뜨거운 양미리 속살에서는 진동하는 바다냄새가 났다. 호호 불며 뼈째 발라먹던 그런 야생의 생선맛을 나는 그 후로는 단언컨대 다시 맛본 적이 없었다. 그때 남대천은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고기를 배부르게 먹고 난 뒤, 우리 형제들은 얼어붙은 강가 바위 옆으로 가서 전날 얼음배를 만들어 놀다 바위틈새에 끼워놓은 각자의 배를 확인하곤 했다. 차가운 달빛 속에서 바위틈에 정박당한 한 평 남짓의 얼음배에는 숯덩이로 새겨놓은 각자의 배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누나의 얼음배는 백장미호, 형의 얼음배는 백골호, 내 배의 이름은 뭐였을까? ‘정의의 라이파이’호였을까?

중앙시장 근처 철둑 아래에서 자란 우리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강에서 놀았다.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만, 일찍 고향을 떠난 뒤 지금까지도 꿈을 꾸면 그 바다와 남대천, 그 산의 모습이 나타나곤 한다. 산과 물을 한데 묶어 ‘산하(山河)’라는 말을 만들어 부르던 옛사람들의 마음을 나는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된다.

얼음배가 완전히 녹아 사라지고, 봄꽃들마저 지고나면, 모내기가 끝난 논에는 오월 햇살에 논물이 반짝였다. 그러면 어김없이 단오(端午)가 찾아왔는데, 그즈음 남대천에는 거대한 난장(亂場)이 섰다. 그 난장이 바로 단오장이었다. 듣기로 우리 고향이 전국에서 가장 큰 단오제를 지낸다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에게 단오는 서커스가 오는 계절이었다. 어느 해에는 임춘앵의 국극단도 왔던 것 같기도 하다.

[릴레이 에세이 강을 말한다]⑧추억은 은어처럼 강을 거슬러 올랐다

아아, 그러나 어찌 동춘서커스단을 잊으랴. 소년이 되자 코끼리나 털이 숭숭 빠진 늙은 원숭이보다 다리가 유난히 가느다랗고 눈망울이 컸던 서커스단 소녀에게 더 관심이 갔다.

모란꽃 무늬가 새겨진 양산을 받쳐 들고 곱게 한복을 입은 어머니들은 굿당으로 몰려들었다. 굿당에서는 동해안의 소문난 세습무(世襲巫)들이 세운 오방색 깃발들이 강바람에 펄럭이며 축제 기운을 북돋웠다. 용왕이나 산신령에게 올리는 제사를 그렇게 미친년처럼 펄쩍펄쩍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지내다니. 무당들의 쉬임없는 사설(辭說)에 어머니, 할머니들은 파안대소를 하다가도 눈물을 찍고 호응했다. 그러고는 거기 가마니가 깔린 강바닥에서 입은 채로 먹고 자며 신목(神木)을 불태우며 굿당 천막을 철거할 때까지 떠날 줄을 몰랐다. 남대천 단오장의 굿당을 한 번이라도 밟지 않으면 한 해를 살아도 산 게 아니라고 믿었던 어머니들.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

하지만 용왕님이나 산신령에게는 관심이 없었던 우리들은 단오빔으로 간신히 한번쯤은 서커스 구경을 했지만, 그걸로는 성이 차지 않아 하염없이 서커스 천막 주변을 기웃거리다 천막 귀퉁이 자갈밭에 오줌을 싸면서 단오제를 지냈다. 공연이 모두 끝난 깊은 밤, 서커스단 사람들은 코끼리를 강가로 몰고 가 목욕을 시켰다. 단오기간 내내 나는 때 묻은 하얀 레이스가 달린 짧은 치마를 입고 줄을 타던 가냘픈 ‘이름 모를 소녀’를 생각하면서 두 손을 샅에 넣고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일찍 온 사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단오가 지나가면 월대산(月臺山) 아래, 방둑 너머에 서 있던 하얀 고아원 건물 앞으로 은어떼가 올라왔다. 고아원은 왠지 신비롭고 조금 두려운 느낌마저 들어 시내에 사는 애들은 그 언저리에 잘 가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해 여름, 나는 그 방둑에서 수천 수만 마리의 은어떼가 물살을 튀기며 노는 장관을 보았다. 붉은 노을 속에서 배때기가 눈부시게 하얀 은어떼는 끝없이 수면 위로 튀어올랐다. 어린 소년의 뇌 속에 찍힌 그 놀랄 만한 자연은 목숨을 지니고 내가 이 지상에 남아 있는 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강의 추억 중 하나다. 늘 조용하기만 하던 그 하얀 건물 안에서 그림자처럼 살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남대천은 늘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홍수가 나면 공설운동장에 연해 있던 목조다리가 부러져 내리기도 했다. 어떤 장마 때에는 산돼지가 출렁출렁 떠내려왔고, 옥수수대궁과 배추더미도 무슨 물귀신의 머리자락처럼 산발이 되어 떠내려갔다. 떠내려가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방둑으로 물구경을 나갔다. 방둑을 가득 채운 거대한 붉은 물살이 급하게 곤두박질치며 흘러내려갈 때, 방둑에 서 있던 사람들의 표정에는 떠내려가는 귀한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자연에 대한 외경심 비슷한 게 어려 있었다. 관동대학이 있던 멀리 내곡이나 회산에 살던 애들은 큰물이 나면 일찍 집으로 보내졌고, 그런 다음날에는 끊긴 다리 때문에 일제 때 놓였다는 시멘트로 세워진 ‘큰다리’로 돌아 등교하느라 더 많이 걸어야 했다. 어른들은 떠내려간 목조다리 대신 서둘러 물살이 가장 약한 곳을 택해 전쟁 때 쓰던, 구멍이 송송 뚫린 철판을 잇고 그 아래 모래가마니를 쌓아 새로운 출렁다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맨 장딴지가 유난히 굵었던 어른들.

물길을 따라 방둑 끝까지 걸으면 바다에 이르렀다. 바다는 장마철 흙탕물을 얼마든지 받아주겠다고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았다. 급하게 흐르던 거대한 민물이 그보다 더 거대한 바다로 번져나가는 송정동 견소항(見召港)은 그후에도 고향에 갈 때마다 동이 틀 새벽녘이면 내가 즐겨 찾는 비밀스럽고 장엄한 장소 중의 하나다.

외갓댁 친척 중 내 또래였던 정옥이가 물에 빠져 죽은 게 어느 해 여름이었을까. 핏기가 하나도 없는 하얀 얼굴로 늘어진 정옥이를 끌어안고 큰이모님 따님이었던 젊은 에미는 피울음을 울었다. 그 뒤로 몇 해는 수영을 하면 발밑에서 어떤 시커먼 손이 내 발목을 잡아당길 것 같은 공포에 시달렸다.

문득 어느 해 여름 남대천 큰바위 밑에서 형들이 잡아온 자라 생각도 난다. 약으로 쓰려고 자라를 잡았을까, 아니면, 자라를 잡은 김에 약으로 쓰려고 했을까? 철사를 장독에 집어넣으면 성질이 난 자라는 철사를 입에 물고 요동쳤다. 굵은 철사도 금세 휘어졌다. 자라의 괴력을 나는 그때 보았다. 그때 그 자라는 강이 마당으로 옮겨온 것이었다. 누구랄 것 없이 우리는 한없이 마냥 흘렀던 강과 함께 태어났고, 자랐다. 그리고 강물처럼 우리도 흘러갈 것이다. 한 인간에게 만약 강이나 산에 대한 추억을 빼버린다면 남는 게 무엇일까? 그건 살아 있으되 살아 있는 게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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