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그루지야에 대한 공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무력하다. 유엔과 유럽연합(EU), 미국 등이 사태 중재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뉴욕타임스는 12일 “미국과 EU는 새로운 지정학적 게임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확신이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EU가 곤경에 빠진 것은 러시아를 상대로 구사할 만한 외교적·경제적 제재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11일 러시아의 군사 행위에 대해 “21세기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많지 않다.
많은 병력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묶여 있는 상황에서 군사적 대응을 할 여력이 없는 데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정식 회원국도 아닌 그루지야를 위해 사태에 개입할 명분도 약하다. 이란 핵 문제 등에서 러시아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점도 미국의 입지를 좁히는 요인이다.
유럽도 속수무책이기는 마찬가지다. 풍부한 석유와 천연자원을 무기로 높은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러시아를 압박할 경제적 수단도 마땅치 않다. 오히려 석유나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는 러시아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다.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전쟁이 발발한 이후 5차례나 긴급 회의를 소집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표류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즉각적 전투 중단 등을 촉구하는 휴전 결의안 초안을 내놓았으나 러시아는 “결의안에 그루지야의 선제 공격 및 잔혹행위에 대한 언급이 없다”며 수용을 거부했다.
그루지야는 유럽이 러시아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중단하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재검토하는 등의 ‘강수’를 두기를 희망하고 있다.
옛 소련 연방인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에서도 11일 서방의 강경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미국과 EU가 이번 사태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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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서구 언론들은 미국과 EU가 러시아에 끌려다니며 러시아의 강대국 재부상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지적들을 내놓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대통령이던 시절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기지 추진,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지지 등으로 악화된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가 더욱 나빠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영국 BBC방송은 “EU와 나토 안에서는 러시아가 그루지야 내 자치공화국인 남오세티야, 압하지야에 이어 우크라이나 쪽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에까지 시선을 돌리는 것 아닌지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