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은 카메라를 잡아본 적이 없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학부모가 됐다면 모를까, 이들의 신산스러운 일상에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순간은 많지 않았다. 밥벌이를 하기 위해 어둠이 깔리면 일어나고 해가 뜨면 잠들기 바빴다. 밤낮을 거꾸로 살았던 언니들의 일터는 서울 용산의 성매매 업소 집결지였다.
발
하지만 언니들 인생이라고 해서 볕들지 말란 법은 없었다. 용산에는 성매매 업소들이 많았지만 ‘막달레나의 집’도 있었다. 사단법인 막달레나의집은 용산 성매매 피해 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지원 센터다. 언니들은 막달레나의집을 드나들며 마음이 따뜻한 친구들을 새로 사귀었다. 다른 삶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감도 들었다. 이들은 일을 그만두고 막달레나의집에 입소했다. 그리고 사진을 만났다.
언니들은 무슨 한풀이라도 하듯이 수천장, 수만장을 찍어댔다. 내가 찍은 하늘 사진이지만 내가 봐도 빛깔이 참 예뻤다. 혼자만 보고 덮어두기에 아까운 걸작이 한 두장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달리 방법이 있겠는가. 다같이 보는 수밖에. 이들은 사진전을 열기로 했다. 지난 29일부터 서울 종로 ‘포스갤러리’에서 열리는 <모든 것이 되는 시간 - 위풍당당 그녀들>이 바로 언니들의 전시회다.
늦게 배운 사진 재미
지금이야 데뷔전을 치른 ‘작가 선생님’이지만, 사진 수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전시회는 남의 일이었다. 막달레나의집 활동가들이 ‘사진전을 할 수도 있으니 무조건 많이 찍으라’고 슬쩍 언질을 주긴 했지만 언니들은 설마설마 했다. 후일 열혈 작가로 변신하는 윤수연씨(29·가명)는 “귀찮게 이런 건 왜 찍으라는 거야?” 불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활동가들은 갖가지 불만에 귀를 닫고 ‘사진이나 찍으라’며 예비 작가들의 등을 떠밀었다. 사진 작업이 그들에게 약이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달레나의집이 사진전을 여는 것은 사실 이번이 두번째다. 1회 전시는 2006년에 치렀다. 막달레나의집 이옥정 원장은 “당시 우리집에 오는 친구들은 사진 찍는 것은 물론이고, 찍히는 것을 특히 싫어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막달레나의집을 거쳐갔다는 것, 즉 성매매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새벽 5시에 뜬 달
“행사할 때 사진을 한번씩 찍는데 그때마다 얼굴을 감추는 거예요. 손님이나 후원자들이 와서 단체 사진을 찍어도 등 뒤로 숨고, 퇴소할 때도 사진을 갖고 가요. 앨범에 있는 것을 살짝 빼가는 거죠. 자기가 여기 있었다는 게 알려지면 안되니까. 그런데 재작년에 사진 프로그램을 해보니 이 친구들이 달라지는 겁니다. 찍고 찍히는 것에 익숙해져요. 어떤 친구는 사진을 찍으면서 웃을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사진 작업이 치유 프로그램으로는 최고인 셈이지요.”
‘재미를 본’ 활동가들은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사진 교육을 정례화하기로 한 것이다. 이들은 2차 사진 프로그램을 위해 디지털 카메라를 몇 대 샀다. (2년 전엔 디카를 여기저기서 빌려 쓰느라 불편했다) 올해 참가자는 입소자 7명과 활동가 등 13명. 교육은 지난 4월부터 2주에 한번씩 받았다. 프리랜서 사진작가 김정하씨가 막달레나의집에 함께 살다시피하며 사진 작업을 이끌었다. 입소자들은 사진 ‘왕초보’였지만 열의 하나만은 대단했다.
“사진기는 처음 들어봤어요. 저는 아무 것도 몰랐어요. 그냥 찍으면 된다고 해서 무조건 찍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 사진과 비교하고 서로 평가하다 보니까 ‘이렇게 하면 안되겠구나, 어떻게든 잘 찍어보자’ 욕심이 생기대요.” 맏언니 격인 김윤자씨(60·가명)가 소녀처럼 수줍게 웃었다.
수연씨도 열정이 넘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럽다. “막달레나의집에 산행 프로그램이 있는데 솔직히 등산은 가기 싫었거든요. 그래도 사진 찍으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산에 가면 예쁜 게 많을텐데. 그래서 갔어요.”
어디 그뿐이랴. “비가 많이 오는 날 나뭇잎에 물방울 떨어지는 장면을 포착하려고 계속 찍은 적이 있어요. 옆을 보니까 거미줄이 있는 거예요. 물방울이 맺혀있는 게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막 찍어댔어요. 그때 일하던 선생님이 지나가면서 ‘어머 예쁘네’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회의 끝나고 올라오면 거미줄을 찍을 것 같다는 생각이 괜히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 혼자 실컷 찍고 거미줄을 없애버렸어요.(웃음)”
카메라가 상처를 치유하네
사진 욕심이 많고 웃음도 많은 수연씨가 막달레나의집에 입소한 것은 작년 9월이었다. 그때가 28세였으니 늦은 나이는 아니었다. 그는 검정고시를 봤고 한번에 합격했다. 성격도 누구보다 활달하고 씩씩했다. 다른 일을 시작하려고 마음 먹었으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수연씨는 결심하지 못했다. 막달레나의집을 벗어나 거리를 걷는다는 게 겁이 났다. 등산이나 견학 등 야외 행사가 있는 날이면 온갖 핑계를 대고 집을 지켰다. “옛날에 일했던 데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보고 잡아간다거나…. 뭐 그런 거 있잖아요.” 그에겐 사회 속으로 들어가기 앞서 우선 대문부터 나서는 일이 큰 숙제였다.
수연씨는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이런 공포를 극복했다. 사진거리는 집 안보다 집 밖에 더 많았다. 마음에 드는 피사체를 찾고 싶다는 욕심이 두려움을 이겼다.
“지금은 괜찮아요. 사람이 배짱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큰언니(이 원장)도 그래요. ‘빚쟁이가 찾아오는 게 오히려 더 낫다. 찾아오면 여기서 해결하자’고. 저도 이제 그런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생각. 물론 걱정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에요. 이제는 친구들이 걱정돼요. 내가 막달레나의집에 있고 사진전을 했다는 게 친구들한테 알려지면 어떻게 하나…. 업주는 이제 걱정 안해요. 올테면 와라, 모르겠다, 배째라.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하는 일이잖아요.” 수연씨는 지난 9월 사진전에 쓸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한라산 여행에 동참했고 생전 처음 비행기도 타봤다.
뛰어
박정숙씨(50·가명)도 사진을 만나면서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겐 디카만큼 흔한 것도 없다지만, 나이 오십에 처음 만져본 사진기는 참 신통한 물건이었다.
“제가 한 곳에서 한 10년을 살았어요. 사진기를 안들고 다닐 때는 밤에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일하는 것밖에 없으니까 잘 몰랐어요. 그런데 카메라를 들고 보니까, 동네에 의상실도 있고 무슨무슨 가게도 있다는 게 다 보이는 거예요. 10년 동안 하나도 안보이다가. 그래서 용산에 있는 다른 사람들한테 물어봤죠. 이게 언제 이사 왔냐고. 그랬더니 10년 동안 그대로 있었다는 거예요. 제가 오기 전부터 있었다는 거죠. 그게 가장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안보이던 게 보인다는 거. 하늘도 예쁘고 별도 예쁘더라니까요.”
“(수연) 그건 맞아요. 그 전에는 하늘을 안 봤는데 지금은 하늘을 찍으면서 ‘하늘 색깔이 저렇게 예쁠 때가 있구나’ 하잖아요.”
카메라는 성매매 피해 여성들에게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줬다. |서성일기자
“(정숙) 예전엔 밤에만 다녔으니까 낮은 또 어떤가 궁금해서 햇볕 내리 쬐는 것도 내다보게 되고.”
사람들과 함께 산에 오르고 사진을 찍으면서 정숙씨에겐 신세계가 열렸다. “밤문화만 알았지 낮에도 논다는 건 몰랐던” 그였다. 결국 일하던 곳을 떠나 막달레나의집에 취직했다. 과거 용산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막달레나의집을 알리는 데도 열심이다.
“막달레나의집 사람들이 여행을 가자고 꼬셔요. 놀러가고 싶어서 여기 오면 무슨 교육 프로그램을 해야 데리고 간다는 거예요. 그럼 교육을 받는 거예요. 수업을 1번 듣고나면 그게 아까워서 2번 오고 3번 오고. 그러다 직원으로 취직까지 했네요. 동네에서 여기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질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여기 온다는 것을 숨겼어요. 하지만 이제는 여기 드나드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얘기해요. ‘우리 오늘 거기 간다, 일 못한다’고. 저도 달라졌고 처음에 욕하던 사람들도 달라졌어요. 자부심이 생기지요. 저 사람들이 더 달라지도록 내가 좀더 달라져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진으로 세상에 말을 걸다
사진에 정이 담뿍 들었는데 전시 준비가 끝나니 언니들은 인생에 낙이 없다. 막달레나의집은 교육 기간 동안 참가자들에게 대여했던 디카를 모두 회수했다. 카메라가 없을 때 사진거리가 더 잘 보이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윤자씨는 “카메라를 반납하고 나니 좋은 게 많이 눈에 띈다. 그런 것을 찍어야 하는데 카메라가 없으니까 좀 아쉽다”고 했다. 이 원장은 입소자들에게 디카를 하나씩 사줘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늘었다.
이번 전시에서 정숙씨는 밀밭에 나란히 서있는 연인들의 사진을 선보인다. 다른 참가자들도 1인당 1~2점을 출품했다. 하나같이 버리기 아까운 사진들인데도 전시는 18점밖에 할 수 없어 도록에 사진을 많이 실었다. 출품작은 전적으로 김정하 작가가 골랐다. 아마추어 사진전이지만 어느 정도 수준은 지켜야 한다고 판단해서다.
그러다보니 아꼈던 작품과 실제 전시작이 달라 속상한 경우도 있다. 하늘에 대한 ‘집착’이 강한 수연씨는 “하늘 사진은 없고 생각지도 못한 사진을 전시 목록에 올려놨다”고 말했다. 그래도 김 작가를 좋아하니까 불평하지 않고 참기로 했다. “선생님이 좋게 얘기하는데 거기 대고 성질낼 수는 없잖아요. 또 선생님이 이것은 이래서 안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된다고 설명을 해주는데 그 말이 다 일리가 있는 거예요.(웃음)”
도록 인쇄가 끝나고 초대장까지 나눠 가졌지만 이들은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 남의 전시 구경하듯 한번 휘 돌아보고 나오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는데 웬걸. 예쁘게 차려입고서 전시장을 지켜야 한단다. 관람객들이 작품에 관해 질문하면 대답도 해줘야 한다. 이렇게 쑥스러울 데가. 상상만 해도 낯간지러워서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다.
어둠이 더 편안했던 이들은 빛의 세계를 만나면서 꿈꾸기 시작했다. 수연씨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있다”고 했다. 언니들 앞에 놓인 새날은 지나간 날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다. 사진전은 11월1일까지 계속된다. (02)2262-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