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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입력 2009.03.02 18:02

  • 조은 시인
[조은의 길]순천만

물이 굽는 곳의 땅은 기름져 보인다. 들판엔 부지런한 농부들이 많이 나와 있다. 대지가 긴 마취에서 깨어난 듯 혈색이 돈다. 하늘빛도 밝아진다. 지평선 끝 바다가 느껴진다.

갈대숲이 나타난다. 물길이 다시 우아하게 굽는다. 바람은 마른 풀들의 귀를 잡아당기며 나직한 말을 속삭이고 있다. 흔들리는 것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흔들리는 것들은 부드럽다. 섬세하다. 다른 존재를 함부로 넘어뜨리지 않는다.

부풀어 오르는 땅을 살짝살짝 들추며 바람이 지나간다. 바람이 들춰본 땅에선 곧 새싹이 올라올 것이다. 아이들은 이마를 반짝이며 어른들의 길을 여러 갈래로 벗어난다. 달려가는 아이들의 실로폰처럼 맑은 웃음소리. 넘어지는 소리. 서로 부딪히는 소리. 누군가 음이 안 맞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간다. 자신이 음치임을 잊어버린 풍경에 취한 자의 정겨운 노랫소리…. 몇 시간 전, 아스팔트를 탕탕 울리며 걷던 그의 발 소리는 이제 풍경 속에 묻힌다.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지나가며 그의 노래를 거들어준다. 한데 어우러지는 그들의 노랫소리에 귀가 열리는지 여기저기서 수면이 반짝인다. 갈대가 빛을 잃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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