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안장하기 위해 소나무 아래 땅을 팠다. 몇 번의 삽질에 땅 속 굵은 나무뿌리가 맥없이 잘려나갔다. 곧 흙으로 돌아갈 그의 골분이 그 뿌리들을 치유해줄 터였다. 그는 무척 야위었지만 보통 키가 넘었는데, 수목장을 하기 위해 유골함에서 꺼내 한지에 옮겨 싼 유골은 한 줌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그만한 부피로 자신을 줄였던 것일까. 무리들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보니 그의 나무를 둘러싼 사람들이 식목행사라도 하는 것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그가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난 한 시인도 그와 삼십여 미터 떨어진 느티나무 아래서 영면 중이다. 나무 아래 서서 그들이 살아있을 땐 하지 못했던 말을 머릿속에 떠올리다 보면, 우리가 가장 낮은 언어로 크게 소통된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이 땅에 없는 사람들의 기억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인의 나무 아래로 가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비슷한 의지를 읽을 수 있을 뿐. 떠나버린 사람에 대한 기억도 정신의 나이테 같아서 그런 기억이 많은 사람일수록 크고 울창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