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예선 사우디전 0대0… 골득실 앞서 조2위로 본선행
한국(국제축구연맹 랭킹 46위)과 북한(106위)이 월드컵 축구대회 사상 처음으로 본선 동반 진출에 성공했다.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북한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8일 리야드 스타디움에서 사우디와 예선 마지막 경기를 펼친 후 북한 대표팀 김정훈 감독을 헹가래치고 있다. 리야드 | AFP연합뉴스
북한은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킹파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 최종 8차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0-0으로 비겼다. 사우디와 똑같이 3승3무2패로 예선을 마친 북한은 골득실에서 2골이 앞서 한국(4승4무·승점 16)에 이은 조 2위로 본선 직행 티켓을 따냈다.
북한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후 44년 만에 두번째로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게 됐다. 북한은 66년 월드컵에서 예상을 뒤업고 8강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남북이 나란히 본선에 오른 것은 1930년 제1회 월드컵 우루과이 대회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축구를 통해 한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린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월드컵 역사상 분단국가가 단일 월드컵 본선에 동반 진출한 것은 1974년 독일(서독) 대회 이후 남북한이 두번째다.
북한은 ‘선수비 후역습’ 맞춤형 전략으로 당초 열세라는 예상을 깨고 월드컵 본선행을 일궜다. 북한은 최종예선 8경기에서 7득점 5실점을 기록했다. 5실점은 아시아 최종예선 출전국 10개국 중 호주(1실점)·한국(4실점)에 이어 세번째다. 공격에서는 정대세(가와사키) 홍명조(FK로스토프) 등 해외파가 제몫을 해줬다. 김정훈 북한 감독은 “위대한 성과를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마침내 킹파드 스타디움에 주심의 종료 휘슬이 길게 울려 퍼졌다. 44년 만에 북한의 월드컵 진출을 알리는 호각 소리였다.
북한 벤치에서 모든 선수들이 뛰쳐 나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펄쩍펄쩍 뛰었다. 90분 내내 마음을 졸이던 김정훈 감독도 코치진과 포옹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북한의 간판 공격수 정대세(가와사키)는 감정에 복받친 듯 바닥에 엎드려 흐느꼈다. 이날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상 공세를 온 몸으로 막아낸 골키퍼 리명국은 그제야 참았던 부상의 고통이 밀려오는지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선수들은 김 감독을 헹가래치더니 무동을 태워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면서 기쁨을 만끽했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8강 신화를 낳았던 바로 그 북한축구가 월드컵 무대에 선다. 수십년 간 국제 무대에 명함을 내밀지 못한 북한 축구대표팀은 김정훈 감독의 지도 아래 조직력을 강화하며 빈틈 없는 수비와 빠른 역습을 무기로 본선 직행을 일궈냈다.
김 감독은 문인국을 비롯해 북한 대표의 절반가량이 속한 ‘4·25체육단’의 감독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2007년 말 국가대표 감독에 취임해서부터 안정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했다. 김 감독은 북한에 프로팀이 없어 국가대표의 장시간 합숙이 가능한 이점을 십분 활용해 수비 조직력을 키워나갔다. 정대세, 홍영조(FK로스토프) 등 해외파 공격수들도 기회가 될 때마다 불러들여 호흡을 맞췄다.

그렇게 키운 조직력은 예선에서 성과로 나타났다. 북한은 최종예선 3차전 이란 원정에서 1-2로 질 때까지 아시아 예선(1~3차예선 포함) 8경기 무패 행진(4승4무)을 이어갔다. 이후에도 홈에서 강적 사우디를 1-0으로 이기고 아랍에미리트를 2-0으로 잡는 등 안정된 경기력을 선보였다.
북한은 최종예선 8경기에서 5실점에 그칠 정도로 빗장 수비를 자랑했다. 18일 북한 경기를 중계한 SBS스포츠의 신연호 해설위원은 “북한은 주전 멤버가 변하지 않고 경기에 나오면서 팀워크가 단단해지고 자연히 수비가 안정됐다. 정대세, 문인국, 홍영조 등 공격수는 단신이지만 빠른 스피드가 위협적이다”라고 평가했다.
북한이 남은 1년 동안 본선에 철저히 대비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했던 66년의 신화를 재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하지만 북한이 본선에서 경쟁력이 있을지에는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공격 루트가 단순한데다 지금의 5-4-1 시스템에서는 상대의 강한 수비 앞에 원톱인 정대세가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주전 멤버 중 부상당하는 사람이 생길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도 숙제다.
무엇보다 아시아에서는 통했던 수비 조직력이 유럽과 남미의 강팀에게도 통할지가 미지수다. 신 위원은 “사우디는 결정적인 순간에 득점을 못하곤 했지만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팀들은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 위원은 “현재 북한은 자기 골문 앞에서만 수비한다. 남은 기간 미드필드에서 상대와 대적할 수 있는 팀을 만들어 상대 문전과 가까운 곳에서 역습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