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여고 동창들이 누각에 서서 강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들이 여고생일 때만 해도 그곳은 바람이 거침없이 내달리던 허허벌판이었다고 한다. 단 한 채의 초가집과 강을 겨우 건너다닐 수 있는 좁은 다리 하나만 눈에 띄었다니, 그땐 정말 운치 있었겠다.
그들이 떠나고 난 뒤 혼자 남아 누각 아래를 내려다봤다. 강물은 마치 고여 있는 것처럼 주변 풍경을 선명하게 비추며 흐르고 있었다. 나의 삶도 하루하루는 그처럼 더디게 흘러간 것 같은데, 큰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아, 걸핏하면 이처럼 눈길을 과거로 돌리느라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나 않는지….
문득 퇴계 이황의 짧은 글 한 줄이 생각났다. 벼슬을 하느라 집을 떠나 있던 그가 식솔들을 돌보며 고향을 지키던 큰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있던 구절이다. “지난해 풀을 벨 때 서당 앞 시냇버들을 베어버린 것이 아깝구나”라던. 어쩌면 소중한 것들은 우리들의 눈앞에서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또는 느린 물살처럼, 또는 권태로운 일상처럼, 더없이 평이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