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서울·베를린 따로 생활… “각자 작업 몰두할 수 있어 좋아”
배 모티브로 흑백의 균형과 조화… 차씨, 내달 4일까지 30여 작품전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장(오른쪽)과 작가 차우희씨는 부부간의 의무보다 예술적 성취를 우선 순위에 두고 살아왔다. 17일 신세계 갤러리에서 차씨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부가 우연히 똑같은 손모양을 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모든 것을 최소화하고 압축시켜 단순하고 군더더기가 없고 순수한 존재감만 남아있지요. 미니멀리즘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고요. 요즘 젊은 세대가 하는 화려하고 컬러풀하고 정열적인 분위기와는 다르지만 시대의 미의식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오광수 한국문화예술위원장(71)이 부인 차우희씨(64)의 작품에 대해 내린 평가다. “작가란 모름지기 자기주장, 자기세계가 있고 그걸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집사람에게는 그것이 있다”고 말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차씨가 “실제로는 전시회 도록에 글 한 번 써준 적이 없다”고 하니까 오 위원장은 “남편이 부인 작품 평론하는 거 봤냐”고 반문했고, 다시 차씨는 “외국에서는 그런 일 많아요”라고 답변했다.
차씨가 지난 16일부터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내 신세계갤러리에서 ‘배는 움직이는 섬이다’란 주제의 전시를 열고 있다. 1990년 이후 개인전만 서른번 이상 열 만큼 쉼 없이 달려왔다. 이번에 나온 30여점은 지난 20여년간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선정했다. ‘배’는 늘 어디론가 떠나는 인생살이의 상징이자 수많은 조각과 부품으로 구성되는 유기체에 대한 비유로서 차씨의 작품에서 중요한 모티브였다.
“<오딧세이> 신화처럼 사람은 늘 어디론가 항해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습니다.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배의 구성요소를 기호로 사용했어요. 흑백을 고집하는 이유는 강하고 소박하면서 내적인 긴장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기 작품은 흰 종이를 요철무늬로 잘라 여러겹 붙인 ‘그리드’ 시리즈다. 이어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흑백의 추상적 화면을 구성한 두꺼운 마티에르의 유화가 나오고, 다시 종이로 돌아가서 긁거나 눌러 요철을 만든 뒤 검정 잉크로 채색한 작품을 했다. 최근작은 나무패널을 이어붙인 조각이다. 얼핏 보면 단순하지만 고도의 균형과 조화를 이룬 작품들로서 짧지 않은 세월의 내공이 느껴진다.
차씨는 1980년대 중반부터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고 윤이상·백남준 등이 받았던 독일연방정부 학술교류기금(D.A.A.D)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작가로서는 넓은 무대에서 많은 자극을 받고 뜻을 펼칠 수 있었지만, 그는 이미 오 위원장과 1969년 결혼해 슬하에 아들을 둔 가정주부였다.
“남편은 처음에 내가 몇달 지나면 ‘찔찔’ 울면서 돌아올 줄 알았대요. 그런데 그렇게 베를린 작업실과 서울 집을 왔다갔다 한 것이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아들은 아버지를 돌보겠다면서 서울에 남았습니다.”(차우희)
“서로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각자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오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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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씨는 베를린에 가면 1초가 아까울 만큼 작업에 몰두한다고 했다. 검은색 옷에다가 검은색 캡을 눌러쓴 차림도 그 때문이다. “검은색이 가장 경제적이잖아요. 미장원에 갈 시간이 없어서 모자를 쓰게 됐어요. 내 그림을 보고 내 옷차림을 본 사람들은 내가 이 그림의 작가라는 걸 인정해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이번 전시의 도록은 북디자이너인 아들 찬솔씨(39)가 맡아서 더욱 뜻깊은 전시가 됐다. 차씨는 “작가는 한곳에 머물면 안된다”면서 “더 열심히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전시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다음달 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뒤 부산 센텀시티내 신세계갤러리로 자리를 옮겨 10월20일부터 11월1일까지 계속된다. (02)310-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