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칠불암 위 깎아지른 절벽 바위에는 구름을 타고 유희좌를 하고 앉아 인간사를 내려다보는 마애불이 있다. 그 앞에 서서 들녘을 내려다봤다. 얼마전 왔을 때보다 조금 더 황금빛을 띠는 논들이 눈길을 잡았다. 이처럼 자연 속에 푹 잠겨 있노라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 뭔지 알쏭달쏭해진다. 사과빛인지 노을빛인지 쪽빛인지, 저 들녘 빛인지….
신라에 불교가 되입된 것은 5세기 이전이나, 성산이라 불리는 남산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엔 아직도 불국토의 염원이 담겨 있는 듯하다. 수많은 석불과 마애불 아래에는 하나같이 촛불이 켜져 있고, 어느 길을 걸어도 쓰레기라곤 눈에 띄지 않는다. 남산에선 종종 비구니나 보살이 주는 떡과 과일로 주린 배를 채울 수도 있다. 하산하여 버스가 다니지 않는 길을 걷다 보면 목적지까지 태워주겠다는 선한 지역 주민을 만나기도 한다.
신선암 위 봉화대로 부는 바람은 서늘했다. 이곳에서는 신라의 궁궐 월성이 있던 들녘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너른 들판에도 벼가 한창 익고 있었다. 수확의 기쁨을 나눠야 할 때인데 추곡 수매가가 지난해보다 훨씬 낮을 거라는 사실이 기억나 마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