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기 때문일까.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이라도 덜 훼손된 자연 속으로 발길이 향한다. 그러면 도시에서 들끓던 혼탁한 생각의 질량이 달라진다. 발걸음도 호흡도 마음도, 심지어는 고통까지도 편안하게 느껴진다.
몇 해 전, 내가 사는 동네의 새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에는 강원도 어딘가에서 뽑아온 적송들이 심어졌다. 아파트 5층 높이로 서 있는 그 나무들을 지나다니며 볼 때마다 한 번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불과 몇 년 사이에 그 중 많은 나무들이 누렇게 말라 베어지고 말았다. 자연의 정서는 고스란히 내게로 이입되고, 나의 정서는 자연에게로 이입되는 것일까. 재해로 넘어져 죽어가는 아름드리 나무를 볼 때보다 더한 안타까움을 그 소나무를 볼 때마다 느끼곤 한다.
도시를 떠나 아름다운 물길을 보며 평화로운 한때를 보낸 날. 두 사람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풍경이 더없이 강렬했다. 누가 왜 깊은 자연 속에 왜 저 많은 자갈을 부려놓은 걸까, 불길했다.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 자갈더미 위의 자갈돌처럼 까마득해 보였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내 존재가 자갈더미 아래의 자갈돌처럼 무기력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