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던 차를 갑자기 세운 건 불쑥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정자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였다. 서둘러 차에서 내려서자 눈앞 풍경이 더욱 근사해 보였다. 마침 은행나무도 물들고 있었다. 처음 길을 멈추게 했던 대상보다도 더 강한 길의 매력…. 여행을 하다 보면 때때로 목적한 대상보다 주변의 것이 더 강렬하게 와닿을 때가 있다. 세월이 지나 다시 그 시점을 돌이켜 생각할 때도 그때 자신을 사로잡았던 그런 것들만 가감없이 기억되곤 한다. 자연 속에서 평생을 살았던 화가가 화폭에 담아놓은 특정한 나무나 집처럼….
채화정은 정자 자체가 식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꽃이 지면 지저분한 꽃대가 물 속으로 가라앉아 깨끗한 모습만 보이는 연과도 같은 모습. 사람도 그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면 매우 고혹적이라 쉽게 홀린 것만 같았다. 채화정 뒤 야트막한 산에서도 단풍이 물들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누군가의 배경까지도 그처럼 아름답다면 그의 매력은 훨씬 증폭될 터….
다시 차에 올라 달려온 길을 돌아다보았다. 가을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추수한 곡식을 수레에 싣고 느릿느릿 가는 농부도 보였다. 그 아름다운 풍경이 잠깐 나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