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히 여름이 가면 뭔가 삶의 새로운 국면이 생길 줄 알았는데…. 다 꿈이었을까. 여름이 끝나고 가을을 제대로 만끽하기도 전에 겨울이 느껴지고, 곧 연말이라는 생각에 초조해진다. 시간은 어떤 요새도 점령할 수 있는 적군처럼 한순간에 나의 정신을 빼앗아 가려 기세를 올리고 있는 듯하다. 망루에 서서 적의 동태를 살피듯이 시간을, 세월을 의식해야 할 때가 된 것일까.
한 번 이런 생각이 들자 배터리가 다 된 전등을 손에 들고 먼 밤길을 가야 할 사람처럼 막막하다. 그런 마음 한편으로는 ‘이것도 삶의 한 과정’이라는 위안도 생긴다. 이처럼 마음이 오락가락할 때 좋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았다. 사람의 불안을 잠재워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사람뿐이라는 듯 그들과의 만남 뒤 평화롭고 눈까지 맑아진 기분이다.
강한 정신을 요새의 돌처럼 쌓아올려도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찾아보면 세월을 이겨내는 방법은 있을 것 같다. 좋은 인연들은 그런 순간순간마다 빛을 발할 것이다. 문득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상처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사랑하십시오”라고 했던 테레사 수녀의 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