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 노래 제목을 따 ‘루시’라 명명
1974년 11월30일 밤 에티오피아 하다르의 협곡지대. 젊은 고인류학자 도널드 요한슨을 비롯한 미국의 화석 탐사대원들은 천막 속에서 시끌벅적한 맥주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이 발견한 뼛조각들에 대한 자축연이었다. 카세트 라디오에서는 비틀스의 노래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먼드’가 흘러나왔다. 이들은 그 뼛조각의 주인에게 노래 제목을 따 ‘루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루시는 약 310만년 전 살았던 유인원과 인간의 공통 조상으로 판명됐다.
루시의 학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다. 루시 전후로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뼛조각들이 단발적으로 발견됐지만 루시만큼 알려지지 않았다. 약 400만년 전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뼛조각이 94년에 발견되기 전까지 루시는 20년 동안 인류의 가장 오래된 조상으로 유명세를 탔다.
사람의 몸은 모두 206개의 뼈로 이뤄져 있다. 요한슨이 찾아낸 루시의 뼈 숫자는 206개의 20% 수준이다. 하지만 수백만년 전 동물 한 개체에서 20%가량의 온전한 뼈가 발견된 것은 전무후무하다. 퍼즐 끼우듯 뼛조각들을 맞추고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루시는 1m10㎝의 키에 몸무게가 20㎏인 여성으로 추정됐다. 직립보행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인간 뇌 진화론을 뒷받침해주었다.
인간도 유인원도 아닌 루시는 세상에 알려지자마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요한슨의 책 ‘루시’는 과학서적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대학 강사에 불과한 요한슨은 순식간에 ‘코스모스’의 칼 세이건에 비견되는 스타가 됐다. 미국 클리블랜드자연사박물관은 복원된 루시를 보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루시 이전까지 발견된 인류의 조상 뼈는 서너 개 남짓이거나 화석 형태가 고작이었다. 이것들은 학문의 일부분으로 대중에게 딱딱하게 다가갔다. 반면 루시는 뼛조각이 많아 생전 모습을 형상화하기 쉬웠다. ‘아주 먼 옛날 호숫가에 살았던 키 작은 여인’과 같은 루시의 이미지는 대중에게 구체적이면서도 신비롭게 다가갔다. 최근 복원돼 공개된 1500년 전 가야 여인이 세간의 눈길을 끄는 이유와 유사하다.
루시는 문화 풍경도 바꿔놓았다. 일반인에게 낯설던 고인류학이라는 학문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당시 루시에 자극받아 또 다른 루시를 찾기 위해 아프리카로 향하는 학자와 학생이 크게 늘었다. 상아탑에서는 ‘인류의 기원’ ‘인간의 정의’ 등에 대한 탐구와 토론이 활발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