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은 삶의 진정성을 본다”
“독립·상업영화 상생 길 필요”
올해 한국영화계의 승리자는 누구일까. 11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흥행 1위, 역대 4위의 성적을 올린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40)을 우선 떠올려야겠다. 인파가 몰린 해운대에 초대형 쓰나미가 닥친다는 설정, 그럴듯한 특수효과, 주·조연 배우들의 호연이 어울린 이 영화는 극장가 최대 성수기인 여름에 맞춰 개봉한 기획영화였다.

1100만 관객을 동원한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오른쪽)과 300만 관객 동원이라는 경이적 기록을 세운 독립영화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왼쪽). 두 사람이 최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한국영화의 오늘과 내일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김기남기자
반대편의 승리자로는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43)이 있다. 한산한 1월, 7개의 스크린에서 상영을 시작했으나 관객의 입소문을 타고 200개 이상으로 스크린을 늘렸다. 통상 독립영화가 1만명 관객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 상황에서 <워낭소리>는 300만명을 불러모았다.
윤 감독은 할리우드와 합작하는 <제7광구>를 위해 미국으로, 이 감독은 <워낭소리> 개봉을 위해 일본으로 향할 예정이다. 바쁜 일정의 윤 감독과 이 감독이 최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 서로의 영화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윤제균 감독(이하 윤제균) = <해운대> 후반작업하느라 한창 바쁜 시기였는데, 하도 입소문이 났기에 스태프들을 다 데리고 극장에 갔어요. “이게 대체 뭔가” 싶었다고 할까요. 일단 너무 많이 울었다는 기억이 나네요. 할아버지는 눈물나게 하는 주연배우, 할머니는 웃긴 조연배우였어요. 보통 배우들보다도 뛰어난 캐스팅이 돋보였습니다.

윤제균 감독
300만명 불러모은 ‘워낭소리’
저예산으로 심금 울리면서
독립영화인들에 꿈 심어줬다
이충렬 감독(이하 이충렬) = 전 <1번가의 기적> 때부터 윤 감독님 영화를 좋아했어요. 오락보다 인간에 눈을 돌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해운대>는 온갖 재미에다가 인간적인 감동까지 들어있는 영화였어요. 기존의 블록버스터처럼 표피적으로 관객을 끌어모은 것이 아니었어요. 컴퓨터 그래픽 이전에 감독님의 마음이 들어있었어요. 최근 본 <2012>는 컴퓨터 그래픽이 넘쳐 지루하기만 했습니다.
윤제균 = 독립영화 300만 관객은 상업영화 3000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충렬 = 그런데 독립영화의 지향점은 돈이 아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상업영화식으로 관객수만 재니까 오히려 당황스러웠습니다. 제가 추구한 가치나 고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로또 맞은 사람처럼 취급하니 환장하겠더라고요.
윤제균 = <워낭소리>는 로또가 아니라 독립영화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줬습니다. 저예산 영화라도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한국영화 사상 처음 보여줬습니다. 현실은 어려워도 견디지만 꿈과 희망이 없으면 못견디죠. 나쁜 짓 해서 번 게 아니라, 성실하게 일한 대가를 받았으니 기분 나쁘진 않습니다. 많은 동료와 후배 영화인들에게 ‘열심히 하면 돈도 벌 수 있는 게 영화다’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영화제작도 많이 했는데 그동안 빚이 많아서 이제 겨우 빚잔치를 한 정도입니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빚이 없다는 게 신기한 지경이니까요.
이충렬 = 전 <워낭소리> 만들면서 정치적 올바름이나 미학적 성취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잘된 것뿐이죠. <워낭소리>가 물을 길어 올릴 때의 ‘마중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방송외주제작사의 독립 프로듀서였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PD들이 현실에 짓눌려 목적 없이 살아왔습니다. 이제 많은 동료들이 ‘내가 이충렬보다 나은데, 더 좋은 영화 만들 수 있다’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그들에게 목적의식을 줬다는 데 만족합니다.
- 이 감독은 저예산으로 작업하면서 100억원대가 투입된 윤 감독의 작업환경이 부럽지 않았습니까.
이충렬 = 주변에선 제가 다큐멘터리를 했다고 하지만, 전 인간의 삶을 제 시선으로 표현한 것뿐입니다. 그 결과가 <워낭소리>였고요. 영화를 처음 배우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다른 영화 사정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멀티플렉스의 여러 개 스크린이 다양성을 담보하지 않고, 자본의 순서대로 배분되는 건 안타까웠습니다.
윤제균 = 전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둘 다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00억원대 영화는 와이드 릴리즈(대규모 개봉)를 해야 수익을 뽑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립영화가 살 수 있는 기회도 열어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10만명만 들어도 손익분기를 맞출 수 있다면 그런 제도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20~30개 스크린에서 시작해 반응이 좋으면 늘리고 없으면 줄이는 방식이 어떨까 합니다. 상업영화가 메이저리그면 독립영화는 마이너리그입니다. 마이너리그에도 뛰어난 인물이 많지 않습니까. 마이너리그를 운영하지 않으면 메이저리그도 수준이 떨어지죠. 메이저리그에서 마이너리그를 도와줘야 합니다.

이충렬 감독
1100만명 관객 모은 ‘해운대’
컴퓨터그래픽 기술보다
인간적인 감동 있어 좋았다
- <워낭소리>와 <해운대> 모두 이성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충렬 = 지금 정권에서 효율과 실용을 얘기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 잊어버린 것이 가족 아니겠습니까. <해운대>에도 디지털 기술보다는 그 안의 아날로그적 감정이 좋았습니다.
윤제균 = 세상 사는 게 골치 아프고 현실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관객이 9000원을 내고 2시간 동안 영화를 보는데, 저 같아도 이성적으로 분석하는 영화를 택할 것 같지 않습니다.
- 두 작품 모두 평소 영화를 많이 보는 20대를 뛰어넘어 고른 세대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윤제균 = 가족 관객을 목표로 만든 것은 아니고, 다만 적은 예산으로 할리우드 영화 <투모로우>를 뛰어넘겠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가족, 사랑, 다양한 계층의 이야기를 모두 넣고 싶었어요. 그런데 무대 인사 가니 노인, 중년, 그 손자 세대가 다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이충렬 = 보통 다큐멘터리는 고향을 ‘강요’합니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힘든 현실도 얘기해야 하고요. <워낭소리>를 두고도 정작 해야 할 얘기는 안하고 노스탤지어만 부추긴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기록이 아니라 해석입니다. 기록만 하려면 폐쇄회로 TV를 설치하면 되죠. ‘잊혀져가는 고향에 대해 관심을 가집시다’라고 말해봐야 누가 보겠습니까. 고향과 부모님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도시인들의 불편함을 강조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제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윤제균 = 우리나라에도 마이클 무어처럼 현실을 ‘해석’하는 다큐멘터리가 나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충렬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도 리얼합니다. 다큐멘터리를 유연하게 정의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다양성이 부족합니다.
- 두 분 다 ‘진심’을 강조합니다.
윤제균 = 관객은 진심을 귀신같이 압니다. <워낭소리>만 해도 돈 벌려고 만들었느냐,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 다 알아냅니다. 아마 <워낭소리>를 억지로 더 슬프게 만드실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면 관객이 다 알아챘을 겁니다.
이충렬 = 다큐멘터리든 극영화든 중요한 건 삶입니다. 삶의 진정성을 보이면 실패할 수 없습니다.
전남 영암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선 교육학을 전공했으나 졸업 후 애니메이션 회사를 거쳐 방송 외주제작사에서 다큐멘터리를 시작했다. 어린이, 노인, 여행, 음식 등 온갖 장르의 방송사 납품용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워낭소리>가 그의 첫 극장용 장편 다큐멘터리다.
▲ 윤제균 감독은
부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광고회사에서 일했다. <두사부일체>로 데뷔해 <색즉시공> <1번가의 기적> 등의 흥행작을 연출했다. 현재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딴 JK필름 대표이며, 막 개봉한 <시크릿>, 내년 개봉 예정인 <하모니> 등을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