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대형 세단 ‘K7’은 기아자동차의 일대 전환점이다. 기아차는 2010년에 이 차를 중심으로 중형차 ‘로체’와 소형SUV ‘스포티지’ 등을 내놓으며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각오다. 차를 직접 시승해보니 기아차의 달라진 모습에 감탄할 만 했다. 베스트셀러인 현대 ‘그랜저’와 비교해 크기, 품질, 안전성 등 모든 상품성에서 월등히 우수하다. 크기와 성능 면에서는 오히려 현대 ‘제네시스’에 근접하고, 자사의 최고급 모델인 ‘오피러스’보다 실내 공간이 크다.
차에 가까이 가니 저절로 사이드 미러가 펼쳐지고 도어 손잡이에 불이 들어왔다. 차가 주인을 알아보고 반응하는, 이른바 ‘웰컴’ 기능이다. 헤드램프 주변으로 ‘ㄷ’ 모양의 미등이 들어왔다. 불빛이 면에 비춰져 간접조명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느낌이 독특하고 고급스러웠다. 특이한 모습에 지나는 사람들이 힐끗 쳐다본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반면에 매끈한 실루엣이 인상적이다. 보닛라인이 길게 뻗어 있고, 윈드실드(앞유리)는 공기저항을 줄일 수 있도록 잔뜩 뉘어져 보닛라인과 거의 직선에 가깝게 이어진다. 2.7리터 모델부터 장착되는 18인치 휠 등 곳곳에 숨겨진 디자인 요소가 차의 이미지를 전반적으로 스포티하게 보이게 한다.
K7는 그야 말로 ‘달리는 세단’
실내에 들어가 엔진 시동을 걸어보니 계기반 바늘에 먼저 불이 들어오면서 “우르릉!”하는 야성적인 소리가 났다. 시동 소리는 이 차가 퍼포먼스 세단이라는 것을 웅변하는 듯 했다.
3.5리터 엔진은 최고출력 290마력, 최대 토크 34.5㎏·m를 낸다. 주력 엔진은 2.7리터로 최대 출력 200마력에 최대 토크 26㎏·m다. 동급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시승한 차는 3.5리터 엔진 차다. 시동을 걸고 나니 공회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소리는 그렇다 쳐도 진동도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 놀라울 따름이다. 가속 패달을 끝까지 밟으니 차의 배기음이 매력적으로 커졌다. 이 소리가 나오게 하기 위해서 수개월에 걸친 소리 튜닝을 거쳤다는 설명이 과언이 아닌 모양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고속 주행 능력이다. K7은 하체(서스펜션)가 단단하게 받쳐준다. 이로 인해 급격한 코너에서도 흔들림이나 기울어짐이 거의 없다. 가속, 코너링, 정지능력 등 기본 달리기 실력이 다른 국산차들과 비교하기 어려운 압도적인 수준이다. 수입차 렉서스 ES350나 아우디 A6(전륜구동)는 이미 넘었고, BMW의 주행감각을 연상케 한다.
3.5리터 모델에 장착된 전자제어서스펜션(ECS)을 ‘스포츠’ 모드로 바꾸었지만, 일반 모드와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코너에서 차체의 기울어짐은 한층 줄었다. 전륜구동 차량인데도 불구하고 희한하게 좀체 ‘언더스티어(운전대를 돌린 것 보다 차가 적게 꺾임)’가 일어나지 않고 운전대를 돌린 그대로 차가 움직였다. 일부러 언더스티어를 유발 시켜봤지만 스스로 전자자세제어장치(ESP)를 작동시키며 차체 방향을 다시 돌려놓았다. 어떻게 국내 서스펜션 기술이 이렇게 발달했는지 의아할 정도다.
가속 패달을 밟을 때 튀어나가는 느낌이 매끄럽다. 이전에 탔던 프로토타입 차량은 패달을 조금만 밟아도 “크르르르”하는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가속이 됐는데, 이번에 탄 최종 양산차는 너무 조용하고 빠르게 가속되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소리가 더 많이 나는 이전 차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속 200㎞까지 달려도 진동이나 소음이 크게 증가하지 않았고, 속도에 따라 저절로 단단해지는 핸들과 하체 덕분에 불안감도 적었다.
6단 자동 변속기는 수동 모드도 지원해 스포티한 운전을 가능케 하지만, 스포츠 모드가 없어서 약간 아쉽다. 감속 시 저절로 높은 기어로 변속돼 엔진브레이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점도 아쉽다. 지나치게 매끄럽다는 것이다.
다양한 기능…행복한 승객
뒷좌석은 공간이 넓어 무릎을 꼬고 앉아도 좋을 정도다. 뒷좌석 천장은 유리로 돼 있는 파노라마 선루프를 장착할 수 있고, 선루프를 선택하지 않으면 천장에 기다란 무드 등이 설치된다.
열선으로 핸들을 따뜻하게 만드는 기능을 작동시키니 기분이 좋아졌다. 버튼을 누르면 전동으로 움직이는 뒷좌석 전동 블라인드도 꽤 고급스런 느낌을 준다.
후방카메라 모니터는 핸들을 돌리는데 따라 진행경로를 표시해주는 ‘주차 가이드’ 기능이 들어있고, 뒷부분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톱 뷰’ 기능도 있다. 주차용은 아니지만 전방 카메라도 있다. 골목에서 나갈 때 사용할 수 있는 장비로, 에쿠스에 장착된 것과 같은 1렌즈 타입이라서 측면에서 오는 차까지 거리를 인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유리창 틴팅(일명 선팅)도 안 된 시승차를 밤에 몰고 나가는데, 눈이 부실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실내 룸미러는 물론 측면 사이드미러까지 저절로 까맣게 변해 눈부심을 방지해줬다. 후진을 하니 사이드미러가 자동으로 아래쪽을 비춰줬다.
한참 주행을 하는데 스피커에서 삑삑 소리가 났다. 경고음을 내주는 장치(LDWS)가 장착된 것이었다. 깜박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옮기면 졸고 있는 것으로 인식해 스피커를 통해 경고음을 내주는 장치다. BMW 7시리즈 등은 차선을 이탈하면 핸들이 진동해 운전자에게만 은밀하고 효과적으로 알리도록 만들어졌는데, 아직 그런 기능은 없는 모양이다.
옵션인 JBL 오디오는 섬세할 뿐 아니라 바지 자락이 펄럭일 정도의 강력한 파워도 갖췄다. 우아한 음악이나 헤비메탈 등 어떠한 장르를 펼쳐도 손색이 없겠다. 2.7 럭셔리 모델부터 12개 스피커를 갖췄고, 앰프도 530와트에 달해 제네시스와 비슷한 정도의 사양이다. MP3 CD를 넣으면 자동으로 차량 내 하드디스크로 음악을 카피해 언제든지 들을 수 있도록 하는 CD주크박스 기능도 내장했다.
이 차는…다시 태어난 ‘기아차’다
보닛과 트렁크에는 기아 뱃지가 붙어 있다. 들리는 바로는 기아 내부적으로는 이 뱃지를 붙여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과거 큰 아픔을 겪었던 브랜드이니만큼 최대한 숨기는 게 판매 신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꽤 있었다. 그러나 기아차는 기아 이름을 붙이고 고급차로 자리매김 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성능이나 품질에 자신이 있으므로 다른 기아 차들도 좋은 이미지로 끌고 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아차의 전성기에 나왔던 프라이드, 콩코드, 세피아, 크레도스 등은 최근까지도 거리를 달릴 정도로 잔고장이 없고 튼튼한 차의 대명사였다. 소비자들도 기아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 이후 경영난으로 현대차에 인수된 후 ‘형님’보다 좋은 차를 만들 수 없었던 암울한 시기가 있었고 소비자들을 실망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K7으로 인해 그동안의 아픔을 씻어내고 과거의 영광을 다시 되살릴 수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