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달러. 기후변화 대비를 위해 에너지 인프라 분야 시설전환에 필요한 비용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향후 20년간 이만한 돈이 투자돼야 한다고 밝혔다. 10조달러면 얼마나 큰 돈이기에? 천문학적 액수라고 하는데 감이 잘 안 온다. 지난해 세계 1위인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명목가치로 14조4000억달러였다. 그렇다면 미국 3억 인구가 한 해 내내 먹고 사는 데 쓴 상품과 서비스 전체 가치의 3분의 2를 넘는다. 2위 일본 GDP(4조9000억달러)의 두 배, 한국(9300억달러)의 열 배 이상을 쏟아부어야 한다.
이 돈 말고도 이것 저것 드는 비용이 많다. 코펜하겐 기후회의에서는 온갖 수치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른바 ‘저탄소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비용’이다. 가령 유럽연합(EU) 기후재단과 정책그룹인 ‘클라이밋웍스’가 작성한 ‘촉매 프로젝트’에 따르면 개도국이 기후변화 프로그램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2020년까지 약 1000억달러가 필요하다. 이산화탄소 감축비용이 2030년까지 세계 GDP의 2.5%가 될 것이란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위원회(IPCC)의 추산도 있다.
그러나 비싸지만 치러야 할 비용이란 의견 또한 많다. 지구라는 거대한 환자의 치료 비용 치고는 되레 싼 편이란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코펜하겐에서 거론되는 ‘향후 몇십년간 몇조달러’는 큰 돈이지만 세계 총생산 규모와 견주면 상대적으로 작은 조각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전 세계 GDP는 60조9000억달러였다. 실제로 20년간 에너지 인프라 전환비용 10조달러를 20으로 나눠 보면 결코 감당 못할 비용이 아닌 듯도 하다. 뉴욕타임스는 “새 일자리 창출에 따른 경제적 효과, 삶의 질 향상, 안전한 에너지 공급, 환경재앙 위험 감소가 비용문제를 상쇄할 수 있을 것”이란 IEA의 입장을 소개했다.
그럼에도 온난화 문제에 대처하는 인류는 아직도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온난화가 심각하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누가 얼마나 돈을 내야 하는가란 문제에선 생각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엊그제는 선진국들이 자신들에 유리한 합의문을 만들었다가 언론에 공개되는 바람에 개도국들이 크게 반발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러다가 코펜하겐 회의마저 말의 성찬으로 유야무야 끝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