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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아름다운, 어청도

  • 이종민 전북대 교수·영문학
[이종민의 음악편지]외로워서 아름다운, 어청도

바람이 찹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란 정호승 시인의 시가 지금처럼 가슴 저미게 다가오는 때도 없을 것입니다. 그 감상을 떨쳐보겠다고 전주한옥마을 실개천을 따라 걸어도 보고 처마가 예쁜 찻집도 기웃거려 봅니다만 쉽지가 않습니다. 인간을 섬에 비유한 한 영국 시인의 표현처럼 외로움이 운명적인 것이라면 벗어나려 헛된 몸부림하지 말고 적응해 나가야겠지요.

아니, 그것을 적극 활용하면 어떨까요? 기실 모든 의미 있는 일들은 외로움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요? 문화를 가꾸고 예술을 살찌우는 일들도 외로움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의로운 역사를 지키는 일도 그렇고요.

전주가 꼭 그랬습니다. 남들 피란 보따리 챙기느라 여념이 없을 때 전주 사람들은 조선왕조실록을 끌어안고 외롭게 조선의 역사를 지켰습니다. 그렇게 세계문화유산 하나를 높고 쓸쓸하게 키워왔습니다. 다른 도시가 산업화, 근대화를 외치며 돈과 실용을 내세울 때도 전주는 외롭게 전통문화를 보듬었습니다.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손 문드러지는 것 모르고 전통 공예에 열중했으며 밤을 새워 비빔밥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이 유독 많은 이곳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는 백석 시인을 유난히 좋아하여 최근에 백석문학상까지 챙긴 ‘높고 외롭고 쓸쓸한’ 시인이 홍도주막 막걸리 집을 수줍게 찾아 외로움을 즐기곤 합니다.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며 “돌아앉은 산들”의 외로움을 노래한 섬진강 시인도 외로워서 더 아름다운 전주천 억새밭과 한옥마을 실개천을 따라 걸으며 “너 지금 뭐 허냐?” 그리움의 전화를 해댑니다.

그렇게 외로움은 그리움으로 이어지며 아름다운 시와 음악으로 피어납니다. 외로워야 밖의 소란스러움에 현혹되지 않고 안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래야 자신의 참모습과 마주하게 되고 이를 통해서만 세상과 우주와 진정으로 만나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홀로 산행을 하거나 바닷가를 거니는 것도 ‘내면의 눈’이 열리는 이 ‘고독의 더없는 행복’을 위한 일입니다.

이곳 전주에는 외로운 섬을 외롭게 챙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들이 새만금에 물질 욕망의 허한 꿈을 쏟아내는 동안 안타깝게 이를 지켜보는 선유도, 장자도, 무녀도, 위도, 어청도를 우리 가락에 실어 노래한 사람들입니다. 이름하여 ‘소리고을’. 이들이 새만금의 이름으로 사라져가는 섬들의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빚어냈습니다. “낙조, 꿈꾸는 섬!” 지난달 초의 일입니다.

오늘은 그중 특히 더 외로운,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그래서 뱃사람들에게 더 반갑고 든든한 피난처가 되어주는 섬 어청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노래한 곡 하나 연말 선물로 띄워드립니다. 전도양양한, 상도 많이 탄, 백석 닮은 시인만큼이나 수줍음이 많은, 기타만 있으면 외롭지 않은, 아니 기타로 외로움을 즐길 줄 아는 젊은 작곡가 안태상이 만든 곡입니다. 전북도립국악원의 유장영이 지휘하며 구음을 보태고 뛰어난 가창력과 적응력의 소리꾼 이용선이 보컬을 맡은 참 참한 곡입니다.

국악실내악단 ‘소리고을’은 전라북도의 삶과 역사, 문화를 주제로 향토음악을 이용한 창작곡을 꾸준히 발표해온 연주단입니다. 2002년 창단 이래 ‘전북의 소리 따라 Ⅰ, Ⅱ, Ⅲ’ ‘전북의 사계’를 잇달아 꾸려왔으며 전북의 감성으로 전북의 섬을 노래한 이번 공연이 그 다섯번째 ‘마실’인 셈입니다.

정호승 시인 말대로 “오지 않는 전화 기다릴” 일이 아닙니다. 그리운 이가 있으면 먼저 전화를 걸 일입니다. 그렇게 외로움 너머로 아름다운 사랑의 가교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 곡 들으시며 외로움을 아름다움으로 피워내는 놀라운 ‘일상의 기적’을 연말에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게 잘 안 되면 외로워서 아름다운 전주한옥마을로 찾아오시고요. 오늘도 좋은 하루!

※음악은 이종민 교수 홈페이지(http://leecm.chonbuk.ac.kr/~leecm/index.php)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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