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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살았지만 용산은 아직 부활하지 못해”

입력 2009.12.18 17:53

사선 넘었다 돌아온 문규현 신부 감사의 편지

“저는 살았는데 용산은 아직 부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살았지만 용산은 아직 부활하지 못해”

용산참사에 항의하며 단식농성을 하다 쓰러져 생사의 고비를 맞았던 문규현 신부(60). 기적적으로 회복해 지난 1일 퇴원한 그가 자신을 걱정해준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와 ‘민중의 소리’에 기고한 공개 편지를 통해서다.

문 신부는 “사랑과 기도, 염려와 정성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늦은 인사를 드린다”면서 “일면식도 없는데 먼 길 달려와 안타까워해준 분들, 기고로 댓글로 용기를 준 네티즌들, 병실 문 밖에 서성이며 말 없이 힘 주고 가신 분들, 저를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려주신 신부님들, 수녀님들, 신자분들 모두 참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살았다. 죽음도 이기고 극심한 고통의 시간도 이겨 나올 수 있었다”며 “그 무엇에 대한 간절함, 함께 마음 모으고 함께 이겨가는 힘이 절망을 넘어서게 했다. 1% 가망성을 100% 현실로 만들어냈다”고 했다.

문 신부는 용산참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도,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해결되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이제 곧 성탄절입니다. 2010년 새해입니다. 충격과 놀라움으로 주체할 수 없었던 그날 새벽,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바로 눈앞입니다. 저는 살았는데 용산은 아직 부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습니다. 저를 살려냈던 그 간절한 마음과 희망의 불씨들이 용산참사 현장도 부활과 기적의 현장으로 살려낼 것임을 믿습니다.”

그는 “불의하고 부당한 현실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면서 “그러나 이런 현실들이 도리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많이 사랑했고, 더 많이 용기를 내었으며, 더 많이 기쁘고 뿌듯했노라고 말할 수 있기 바란다”고 편지를 맺었다.

문 신부는 지난 1일 퇴원하자마자 곧바로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용산참사 현장을 찾았다. 심장이 갑자기 멈출 때를 대비한 보조장치를 단 채였다. 그는 지금도 허리에 보조기구를 착용한 채 움직여야 하고, 진통제를 먹어야 잠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문 신부는 1989년 평양 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씨와 손잡고 판문점을 통해 걸어내려옴으로써 ‘통일의 사제’로 자리매김했다. 이후에는 새만금 간척사업과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등 생명·평화운동에 힘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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