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은 당신의 것입니까. 이렇게 묻는다면, 무슨 소린지 몰라 잠시 당황하거나, 혹시 심오한 뜻이 숨어있나 싶어 질문을 곱씹어볼지 모르겠다. 둘 다 잘못 짚었다. 질문은 문자 그대로, 당신의 몸은 당신 것이냐고 묻고 있다. 대답해야 할 이들은 대한민국의 가임기 여성들이다.
지난 18일 ‘저출산 극복을 위한 생식(生殖)건강 증진대회’라는 행사가 이화여대에서 열렸다. 보건복지가족부 연구사업으로 이대 건강과학대에 설치된 ‘캠퍼스 생식건강 증진센터’가 주최하고, 6개 대학의 ‘생식건강 증진 동아리’ 학생들이 참여했다. 건강을 증진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목적이 저출산 극복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건강은 개인의 행복을 위한 것일 뿐,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9일에는 성신여대에서 ‘행복한 출산, 부강한 미래’라는 특강 콘서트가 열렸다. 복지부가 제작한 출산 홍보 동영상 상영으로 시작된 행사는 학생들의 ‘출산 서약’을 담은 선언문 작성으로 마무리됐다. 여기에는 적극적 출산과 낙태 방지에 앞장서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여성 총장과 여대생들이 자랑스럽게 선언문을 들어 보이는 사진이 여러 매체에 실렸다. 그들은 웃고 있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씁쓸한 대학가 출산장려 캠페인
두 여대에서 며칠 사이 일어난 일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지난달 미래기획위원회가 저출산 대책으로 ‘낙태 줄이기’를 언급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 뒤편에는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여성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환원하려는 위험한 사고가 도사리고 있다. 여성의 건강권이나 신체적 자기결정권을 출산이라는 국가 의제보다 낮춰 보는 반인권적 시각도 숨어 있다. 이런 식이라면 여성의 불임은 혼전 건강관리를 소홀히한 탓이고, 출산율 저하는 여자들이 저만 편하겠다며 아이 낳기를 기피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국가발전을 명분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통제하려는 발상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윤리 논란에 휩싸이기 전, 난자를 실험에 제공한 여성들은 ‘애국적이고 희생적인’ 여성들로 포장됐다. 당시 일부 여성 기업인과 정치인들은 민간 난자기증재단 설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여성 인권 침해’라는 비판론은 애국주의 광풍에 묻혔다.
그러나 저출산 문제는 여성의 선택을 압박하거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저출산 현상의 기저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최근 가장 주목받는 변수는 양성평등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박수미 연구위원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여성권한척도와 출산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여성권한척도가 높은 양성평등 사회일수록 출산율이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사례가 노르웨이다. 이 나라의 출산율은 선진국 가운데 상당히 높은 1.9명선이다. 인위적 출산장려 정책을 펴는 대신 일터에서 남녀차별을 없애는 데 힘쓴 결과다. 노르웨이는 상장기업·공기업 임원의 40% 이상을 여성에게 할당토록 의무화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의 최동순 연구원이 22일 내놓은 보고서도 흥미롭다. 1인당 소득 2만달러를 넘는 21개국을 살펴보니, 남녀 소득격차가 줄어들수록 출산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OECD 30개 회원국 중 최대이며, 주요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한자릿수다. 유엔개발계획이 발표하는 여성권한척도는 109개국 가운데 61위, 세계경제포럼이 평가하는 성격차 지수는 134개국 가운데 115위다.
양성평등 사회 출산율 안정적
전재희 복지부 장관은 저출산 대책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 대학가의 출산 장려 캠페인을 지원하는 데 아까운 인력과 예산을 쓸 필요가 없다. 경제단체장과 재벌 회장들에게 직장 내 성차별을 철폐하도록 촉구하는 게 차라리 효과적이다. 2명뿐인 여성 장관을 늘려달라고, 청와대에 여성 수석비서관을 기용해달라고 대통령을 압박하는 것도 방법이다. 4대강 사업비의 일부라도 보육 지원으로 돌리는 대통령의 결단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젊은 여성들의 애국심에 기대기엔, 저출산 문제의 뿌리가 너무 넓고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