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낯선 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현지에서 흔히 겪는 배탈과 설사 증상이다. 소화기 계통에 별 문제가 없던 사람도 여행 중에는 배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 여행객의 경우는 특히 더하다. 그 주원인은 바로 물이다. 물을 바꿔서 먹었을 때 배탈과 설사가 흔히 발병한다. 지금은 식수환경이 개선돼 많이 나아졌지만, 1970~80년대에는 해수욕장에서 배탈과 설사로 피서분위기를 망치는 이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다시보는 명약]정로환… 배탈·설사대비 여행 필수품](https://img.khan.co.kr/news/2009/12/30/20091231.01100123000002.02M.jpg)
낯선 땅에서의 배앓이가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는지는 역사적 사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04~1905년 러·일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만주에 주둔해 있던 일본 군대에서 일어난 일이다. 평소 건강하던 일본 군인들 중에 만주에서 근무하면서 특별한 질병 없이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일본군 지휘부는 면밀히 조사한 끝에 그 주범이 설사임을 알아냈다. 그리고 천황에게 물에 의한 설사로 군 전투력이 약화된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이에 천황은 칙령을 내려 배탈·설사에 우수한 한약을 만들게 하고 이를 군인들을 비롯한 전 국민에게 공급토록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만주의 일본군은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 약이 바로 정로환(征露丸)이다. 러시아(露: 일본식 표기)를 정벌(征)한 환약이라는 뜻이다.
지금의 동성제약 ‘정로환(正露丸)’이 탄생된 배경이다. 당시 일본의 정로환은 다이코신약에서 개발해 판매하고 있었다. 동성제약 창업자인 고 이선규 회장이 국내에도 배탈·설사 환자가 매우 많아 처음에는 이를 수입했다. 이후 자체 개발하고자 일본 정로환 용기에 표시된 대로 제조했으나 실패를 거듭했다. 마침내 이 회장은 다이코신약에서 퇴직한 전 공장장을 찾아가 삼고초려 끝에 기술을 알아내 72년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오래 전부터 일본 가정상비약으로 자리잡은 정로환 제조기술 유출을 다이코신약이 철저히 차단하던 때였다.
정로환은 방부살균 작용과 위장의 기능 촉진에 효과가 있는 여러 가지 생약제를 합리적으로 배합하여 만든 제제로 배탈·복통·설사에 치료효과가 높다. 특히 특유의 냄새를 제거한 정로환 당의정이 개발돼 복용이 더욱 편리해졌다. 방부살균 작용을 비롯한 진정, 진경, 지사, 구풍 작용 등을 통해 설사 등 장 질환 치료의 대표적인 의약품으로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