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부문별로 짚어본 한국 경제의 현주소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 발생. 정부는 우리 경제가 그 어느 곳보다 빨리 위기를 극복했다고 설명한다. 실제 정부의 재정투입과 원화가치 하락 등으로 거시, 금융, 실물 부문의 수치는 위기 전으로 되돌아갔다. 그럼에도 정부는 고용, 대외변수 등 불안 요인이 많다며 금리인상만은 절대불가를 외친다. 우리 경제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가. 앞날은 ‘푸른 색’인가. 고용, 부채 등 경제장애물들은 어떻게 넘어야 할까. 세계금융위기 19개월째를 지나면서 궁금증을 들여다봤다.
■ 거시경제…생산·수출 등 호조불구 고용 안 풀려 한계
주요 경제 지표들이 보여주는 우리 경제는 현재 ‘푸른’ 신호등이다.
경제성장률을 비롯해 생산·소비, 수출입 증가율 등이 호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용 사정이 나아지지 않고 있어 서민들이 경기 회복을 체감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또한 사실이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마이너스 5.1%(2009년 1·4분기)까지 떨어졌던 경제성장률은 올 1·4분기 0.8%까지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플러스 0.2%였다. 미국, 일본은 물론 유럽의 선진국 대부분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크게 선전한 수치다. 확장적 재정책과 수출 증대 덕분이었다.
광공업 생산의 경우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 등의 영향으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한 상태다. 민간소비는 지난해 승용차 세제효과 등 일시적 요인이 크게 기여한 측면이 컸지만 최근 조금씩 나아지는 추세다. 위축됐던 설비투자도 반등해 위기 이전 수준에 근접했다. 수출입 역시 모두 반등했다. 지난 3월 수출액은 전년 동월보다 35% 증가해 376억9000달러로 2008년 7월 고점대에 근접했다. 이에 따라 올해 성장률은 5% 안팎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불안한 대목은 고용 지표 정도다. 금융위기 이전 실업률은 3%대였으나 현재 4%대에서 머물고 있다. 고용률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위기 당시 57%까지 하락한 고용률은 3월 현재 57.8%에 머물러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김현욱 연구위원은 “경제지표가 안정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고용 지표는 정상화되지 않았다”며 “정상화 단계에서 고용상황 회복과 부실기업 구조조정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 금융…유동성 덕 빠른 회복, 펀더멘털은 아직
금융지표 수치들만 놓고 보면 금융시장은 이미 위기 전 수준으로 회복된 지 오래다. 코스피지수는 2008년 8월29일만 해도 1474.24이었다. 그해 9월16일 리먼 사태가 발생한 이후 급락해 10월24일에는 938.75까지 급락했다. 그리고 지난 16일 현재 1734.49를 기록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전의 수준 그 이상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르면 올 3·4분기에 1900선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원달러 환율도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 거의 근접했다. 금융위기 직전 1100원 전후였던 환율은 2009년 3월 1570.30까지 치솟았지만 지난 16일 1110.3원으로 내려앉았다. 민간연구소들은 올 하반기 환율을 1000원대 후반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 김완중 연구위원은 “지표 회복은 유동성 덕분이 크다”며 “펀더멘털은 아직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기준금리는 위기 전 연 5.25%에서 2009년 2월 2%대까지 떨어진 뒤 현재까지 동결된 상태다.
유동성을 죌 경우 주가는 출렁일 것인가. 김 연구위원은 안심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남유럽의 국가리스크 등 해외변수가 취약한 만큼 출구전략이 본격화되면 출렁일 것이란 설명이다. 출구전략 자체가 이미 시장에 반영돼 있어 더 이상 변수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많다. 최근의 장세가 단순히 유동성의 힘만이 아닌 기업들의 실적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도 후자의 판단에 힘을 싣는다. 시장 전문가들은 “금리인상 시 시장에서 일정 부분 동요는 있겠지만 주가를 과거로 되돌릴 정도로 동력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환율의 경우 현재 경제정책팀이 고환율주의자들로 포진해있지만 인위적인 인상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고환율에 미국 등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 기업…대기업만 실적 개선, 대부분 ‘고난의 행군’
기업 실적이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2009년 1·4분기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며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명을 질러대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18일 현대증권에 따르면 국내 233개 주요 기업의 1·4분기 매출액은 전년 같은 분기보다 27.4% 증가한 252조5000억원으로 추정됐다. 2009년 1·4분기 198조2000억원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영업이익도 전년 같은 달보다 173.9%가 증가한 21조4000억원에 달해 2008년 2분기(20조1000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올 1·4분기는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금융위기 수준을 초과하는 첫 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앞으로다. 전망이 엇갈린다. 분석을 위한 요인들이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실제 국제유가 및 상품가격 급등과 환율급락, G2출구전략시점, 더블딥 가능성 등 감안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다. 현대증권이 외부변수에 민감한 43개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최고와 최악의 시나리오를 설정 분석한 결과 매출액은 6.3%포인트, 영업이익은 15.2%포인트나 차이가 날 것으로 전망됐다. 그만큼 혼란스럽다는 뜻이다.
물론 한쪽에서는 기업실적 개선이 본격 시작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9월에도 원달러 환율 하락과 선진국 소비둔화가 겹쳤지만 기업실적은 좋았다는 게 논거다.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은 “향후 실적이 1·4분기보다 낮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글로벌 우량기업 몇몇을 제외하곤 상당수 기업들이 ‘고난의 행군’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치만으로 기업 모두가 회복됐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현대증권 임종필 연구원은 “3·4분기 이후에는 둔화될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고 말했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 진단…지표 호전에도 전망은 제각각“부실기업 구조조정” 한목소리
취직이 쉬워지고 월급봉투가 두툼해져야 국민들은 경제회복을 실감할 수 있다. 일부 경제지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고용과 가계소득이 증가세로 돌아서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경제회복만하더라도 변수가 너무 많다.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남유럽의 재정위기가 여전하고, 출구전략 시행에 따른 부작용이 잠재해 있는 상황이다. 또 위안화절상이나 원유, 철광석 등 상품가격의 급상승 등도 우리 경제 부활을 막는 변수가 되고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1년여 만에 다시 2008년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것은 놀라운 성과이기는 하지만 성장사이클로 재진입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라며 “경제성장률 등 주요 경제지표에는 기저효과가 상당수 끼여있어 체감상황보다는 부풀려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가 성장궤도에 오르더라도 고용문제는 일거에 해결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가계부채도 성장만으로는 해결하기가 버겁다는 지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고용 없는 성장 추세가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 수 있다”며 “소득양극화도 심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서민가계소득은 별로 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늘어난 유동성과 가계부채도 부담거리다. 넘쳐나는 유동성이 생산적인 투자로 연결되는 길을 빨리 찾지 않으면 부동산이나 증시의 자산거품으로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늘어난 가계대출은 금리인상 때 대출이자 상승으로 이어져 서민들의 소비를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
경제지표 호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읽는 시각은 전문가 사이에서도 미묘하게 엇갈리는 게 사실이다. 예컨대 두달 연속 고용이 늘었다며 성장을 예견하는 분석이 있는 반면 서민층이 다수인 자영업자의 일자리 감소가 멈추지 않아 고용시장 빙하기는 계속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또 가계부채도 고소득층이 주로 지고 있어 큰 문제가 아니라는 시각과 가처분소득대비로 보면 미국, 일본보다도 높아 위험성이 더 크다는 견해도 상존한다.
경기에 대해서도 비수기인 1·4분기 기업들이 깜짝실적을 거뒀다며 ‘상승국면’이라고 진단하는가 하면 경기선행지수가 추락했다며 이제는 ‘하강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처럼 어느 누구도 현 경기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면서 정부정책에 대한 주문도 엇갈리는 상태다. 금리인상만 해도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경제연구원은 금리인상을 앞당길 것을 주문한다. 반면 민간연구소들은 아직 이르다고 반박한다.
다만 부실기업 구조조정 등에 대해서는 속도를 낼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다.
김현욱 KDI 연구위원은 “그동안 늦춰졌던 구조조정은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털고 가야 한다”며 “더 늦어지면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병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