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보다 헌법의 기본 가치가 우선’ 대법판례 반박…‘관행’ 바뀔지 주목
헌법재판소가 29일 결정문을 통해 밝힌 ‘정당한 쟁의행위와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대한 판단은 그동안 검찰과 경찰이 파업 등 쟁의행위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마구 적용한 것이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사측이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에 대해 고소·고발을 하더라도 검·경과 법원은 법적용을 더 엄격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위력만으로도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검·경도 이에 따라 사측이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 때문에 영업 방해를 받았다”고 고소·고발하면 폭력 등 특별한 불법행위가 없어도 수사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파업 등 쟁의행위 관련 수사에서는 업무방해죄가 단골 메뉴처럼 적용되고 있다. 대부분 처벌대상이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 전부가 아니라 노조 간부 등 파업 주동자에게만 집중되는 것도 검·경이 업무방해죄를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헌재의 결정문은 이러한 ‘마구잡이식’ 파업수사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쟁의행위가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함에 있어서 헌법 33조의 단체행동권 보장의 취지를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단체행동권인 쟁의행위를 처음부터 범죄로 추정해서는 안 된다는 가이드 라인을 내놓은 것이다.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노동자들이 사측과 대등하게 협상하려면 수단이 필요하다. 이 수단이 파업이나 태업 등 단체행동이다. 이들 행동은 처음부터 ‘위력’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헌법은 이 같은 파업·태업 등 단체행동을 노동자들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헌재가 이번에 내린 판단은 이 같은 헌법상 기본권이 형법보다 우선돼야 한다는 것을 좀 더 분명히 한 것이다. 지금처럼 파업이라는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될 수 있고, 검·경이 수사할 수 있게 하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법 자체를 더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검·경의 수사 및 기소와 법원의 판결에도 파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무리한 기소 및 판결이 있을 경우 또다른 헌법소원으로 이어지고, 지금의 관례를 근본적으로 바꿀 결정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헌재의 이번 결정문은 검·경의 수사와 법원의 판결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구속력을 갖지는 못한다. 하지만 파장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누가 봐도 적법한 쟁의행위에 대해 수사를 할 경우 검·경이나 법원으로서도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검 공안부 관계자는 “사업주들의 업무방해 고소를 막을 수는 없어 이를 확인하기 위한 수준의 수사는 계속돼야 하겠지만, 이번 헌재의 판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헌법 해석에서 최종 권한을 갖고 있는 곳이 헌재이기 때문에 헌법과 관련한 대법원 판례 역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파업이나 태업의) 절차가 정당하다는 이유로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노조 측의) 주장이 법원에서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결국 업무방해죄를 가리는 법원의 판단 기준은 조만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