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안보전략 보고서’ 공개… 부시의 선제공격론 폐기
“군사행동은 최후 수단” 외교정책 프레임 재설정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미국의 안보 청사진’으로 불리는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를 27일 공개한다. 보고서에는 북한과 이란에 대한 강도높은 압박과 함께, 일방주의·선제공격론 폐기 등 전임 행정부 안보전략과의 결별을 선언하는 내용들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AP, AFP통신은 이날 미리 입수한 52쪽 분량의 보고서 문안을 인용, “북한과 이란에 대화냐 고립이냐(engagement or isolation)의 분명한 선택을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보고서는 북한과 이란 두 나라가 “대화를 할 것인지 더욱 심한 고립을 맞닥뜨릴 것인지 선택에 직면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 16개월 만에 내놓는 이 보고서에서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선제공격론’을 사실상 폐기하고 일방주의 외교와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이 ‘일방적인 군사행동을 할 권리’가 있음을 명시했으나 외교적 수단이 모두 소진된 이후의 ‘최후의 수단’임을 못박았다. 오바마 정부는 “군사적 수단이나 일방적 공격을 할 필요성 자체를 없애는 것”을 국가안보전략의 목표로 잡았다. 보고서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가진 이미지에 맞춰 세계질서를 재구축하려던 부시 시대의 꿈은 접고 새로운 열강들의 부상을 인식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외교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해야 한다”며 군사력뿐 아니라 외교적인 수단과 경제적인 동인들, 개발 원조와 교육에 이르는 다양한 방법들을 예로 들었다. 다만 북한·이란과는 ‘환상을 없애고’ 대화를 해야 한다면서, “그들이 국제적인 의무를 무시한다면 핵 비확산이라는 규범을 지키도록 만들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현재의 세계를 ‘진화하는 위협으로 둘러싸인 세계’로 규정하고, 아프가니스탄·이라크의 두 전쟁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외교정책의 프레임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테러리즘 대응 일변도였던 부시 정부의 틀을 벗어나 광범위한 전염병, (경제적) 불평등에 맞선 싸움에서부터 사이버전쟁 등 다양한 종류의 위협들을 거론했다. 또 이번 보고서에는 처음으로 ‘자생적 테러리즘’에 대한 경고를 담았다. 최근 발생한 뉴욕 타임스 스퀘어 폭탄테러 기도, 텍사스 포트후드 기지 총격사건 등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미국 땅에서 급진화된 자생적 극단주의자들의 문제가 안보정책의 핵심에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27일 오후 워싱턴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보고서를 공개한다. 이번 보고서는 민주당 인사들뿐 아니라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 공화당 인사들의 조언까지 담았다. 하지만 부시와의 차별성을 강조했음에도 차이보다는 유사성이 더 크다는 지적도 많다. ‘미국이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면서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알카에다 세력을 섬멸해야 한다’는 내용은 이번 보고서에도 그대로 실렸다. 부시 행정부 때 NSS 보고서 작업에 참여했던 듀크대학 피터 피버 교수는 “통수권자의 레벨에서 생각하는 전략은 차이점보다 유사점이 훨씬 많다”고 말했고, 포린폴리시는 “오바마의 NSS는 ‘부시 2.0’?”이라고 꼬집는 기사를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