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품격의 추락, 내 인격의 추락

김선욱 | 숭실대 교수·철학

베트남 신부 땃티황옥씨가 우리나라에 온 지 1주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되었다. 이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니 이 땅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지난 6월 말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4년6개월의 임기를 다하고 그 업무를 종료하였다. 임기가 다하기는 했는데, 과연 해야 할 일도 다했을까? 이런 위원회는 할 일을 다 해야만 임기가 끝나는 게 아닌가? 이런 최근의 일들을 보면서 나는 국가의 품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유와 성찰]나라 품격의 추락, 내 인격의 추락

오래전 군 복무할 때의 일이었다. 전두환 정권하의 일인데, 행정병으로 복무하던 내가 소속된 부대는 당시 비상시 작전계획을 수정하고 있었다. 그 즈음 군무를 마친 늦은 밤, 친하게 지내던 동료 둘과 몰래 술잔을 나누게 되었다. 문득 한 친구가, “전쟁이 나면 난 탈영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는, “그래? 난 아직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전쟁이 난다면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할 것 같아”라고 화답했다. “왜 그러는데? 왜 탈영한다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이런 나라를 위해 내 목숨을 바치고 싶지는 않아”라는 것이었다. “탈영하면 어쩔 건데?”라고 물으니 “뭐, 일본으로 밀항하든지…”라는 답이 날아왔다. 천안함 사건이 터지고 이후의 과정이 전개될 때,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일이 퍽도 오래전 군에서 있었던 바로 이 충격적인 대화였다. 그래. 이 땅에서 전쟁이 터질 수도 있다. 천안함이 누군가에 의해 폭침되었다면 그 짓을 한 쪽은 북한일 것이라고 나도 생각했다.

베트남 신부 죽음 막을 수 없었나

선거가 코앞이었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정부의 대응이 냉철했다.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국방장관은 “북한의 개입가능성이 없다고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이에 대해 김동성 의원은 “그 말은 북한의 개입가능성이 있다는 말도 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논리적인 대화였다. 하지만 동일한 전제에서 “북한의 개입가능성이 없다는 말”도 똑같이 논리적으로 추론된다. 이후에 할 일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충분히 조사해서 진실을 규명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한반도에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지만, 전쟁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 전쟁을 수행할 젊은이들의 참전 동기가 확실해야 한다. 애국심이 나라를 지키는 사람의 몫이라면, 그들이 나라에 대해 자부심을 갖도록 만드는 일은 기성세대, 특히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의 몫이다. 그나마 참여연대가 유엔을 상대로 했던 일 덕분에 체면을 조금은 살렸다. 정부의 체면은 깎였겠지만 나라의 품격은 덜 깎였다는 말이다.

천안함 증거 충분한 조사 아쉬워

학문의 세계에 대해 말하자면, 학문의 품격은 엄격성에서 나온다. 재미 한인학자인 내 은사는 한국에서 발간해 보내온 한 저술에 외국 학자 이름의 영문표기가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는 “책의 품위를 현격히 떨어뜨리는 오류”라고 말했다. 지나친 비판이 아니냐는 반문에 그는 “학문적 자질의 문제”라고 하였다.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학자들이 과학적 근거로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한 것은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그들의 학문적 품격을 위해서도, 나라의 품격을 위해서도 말이다. 불의하게 고통 받은 모든 이들의 억울함을 신원하는 그날까지 진실화해위의 활동을 계속하게 할 수는 없었을까? 가족과 눈물의 이별을 뒤로한 채 행복을 꿈꾸며 왔던 베트남 신부에게 한국 땅이 저주의 땅으로 바뀌지 않도록 할 수 없었을까? 시간을 충분히 갖고서 천안함 관련 증거들을 비판적으로 철저히 점검할 수는 없었을까? 국가의 품격을 위해서는 이런 모든 일들을 꼼꼼히 살펴야만 한다. 떨어진 국격에 마음 아파하자니, 곧 학회에서 만나야 할 베트남 친구 교수를 무슨 낯으로 보아야 하나 하는 걱정이 드민다. 그들에게 내 인격도 함께 추락해버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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