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아인혼 미 국무부 이란·북한 제재 담당 조정관이 방한해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한 대북 금융 제재를 위해 몇주 내 불법 활동에 관여한 북한의 기업 및 개인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전에도 유사한 제재를 가한 바 있지만, 북한의 태도를 바꾸지는 못했다. 우선 북한은 유령회사, 명의 변경, 가명으로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또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이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북한을 제재할 가능성도 커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2005년 마카오에 있던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BDA)을 북한 돈 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 북한자금을 동결한 것처럼 한다면 일정한 타격을 줄 수 있겠지만, 그런 강력한 제재는 피했다. 그 때문에 이번 대북 금융 제재의 실질적 효과가 의문시된다. 아마도 상징적 행위에 머물 것 같다. 그러므로 미국의 금융 제재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북한의 태도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은 품지 않는 게 좋다.
천안함 사건뿐 아니라, 그 어떤 북한문제를 다룰 때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이 나쁜 행동을 했다. 그러므로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단순 논리로 접근해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이란 핵문제의 예를 들어 보자. 유엔 안보리는 이란 핵 개발 계획에 대해 강력한 제재 결의를 했고, 그에 따라 미국은 제재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이란 제재에 대해 관심이 없다. 아니, 제재에 참여할 생각조차 없다. 연 40억달러의 수출시장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이 이란 제재에 동참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아인혼 조정관의 실제 방한 목적도 대북 제재 협의보다 한국에 이란을 제재하라고 압력을 가하는 데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은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자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이다. 대 이란 제재를 내놓고 반대하거나 거부할 명분이 없다.
그러나 이란 핵문제에는 한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지 않다. 오직 핵폐기의 명분을 위해, 동맹의 뜻을 존중하기 위해 현실적 이익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의 고민이자 딜레마이다. 원칙과 명분, 현실은 이렇게 항상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오히려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부에 묻고 싶다. 왜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고민의 절반만큼이라도 천안함 사건 등 북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가. 북한 문제의 복잡성을 왜 그렇게 단순화하고, 흑백논리로만 접근하려 애쓰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