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만의 대홍수로 국가재앙에 빠져 있는 파키스탄 때문에 미국이 골치를 앓고 있다. 파키스탄 홍수의 결과에 따라 미국의 파키스탄 전략이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다. 미 행정부는 이에 따라 파키스탄 전략에 대한 재평가작업에 돌입했다. 겉으로는 인도주의적 구호가 우선이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국가안보와 관련한 잇속을 고려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파키스탄 대홍수가 미국의 파키스탄 전략에 미칠 영향에 대한 평가작업으로 미 행정부가 분주하다고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지난 18일 보도했다. 미 행정부의 한 관계자는 NYT에 대홍수가 미국과 파키스탄 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알카에다와의 전쟁에 파급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이라크·아프간 전쟁 담당 부보좌관인 더글러스 루트 중장은 “양국관계에는이 역사적인 재앙의 결과에 따라 중요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면서 “새로운 현실에 비춰 모든 외교적 수단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탈레반과 알카에다 세력이 대홍수를 이용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탈레반이 한계에 달한 파키스탄 정부를 대신해 구호에 개입하는 등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발빠른 구호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9일 파키스탄 수해 현장을 둘러본 존 케리 상원의원은 “아무도 이 위기가 다른 사람의 불운을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목적으로 활용하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해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했다.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도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부정적인 세력이 이 상황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고아를 훈련 캠프로 데려가 테러리스트로 훈련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탈레반 소탕에 몰두해온 파키스탄 군이 이재민 구호 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는 점도 미국으로서는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자칫 대테러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정부 역시 대홍수에 따른 고통이 크면 클수록 탈레반과의 전쟁에 신경을 쓰기가 힘들어 진다.
당장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미국이 파키스탄에 지원키로 한 75억달러는 당초 목적과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다.
향후 5년간 다양한 인도적인 계획에 투입할 예정이지만 수해복구 예산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간 파키스탄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개선하려는 미국의 시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지난달 파키스탄을 방문해 발전소 시설 개선 등을 약속한 것도 홍수 때문에 묻혀버렸다. 미국 외교관계위원회(CFR)의 대니얼 마키는 NYT에 “전에는 시설을 개선할 발전소가 있었지만 지금은 물속에 잠겼다”고 말했다. 현재 파키스탄 주민 70만명이 임시 거처조차 없어 노숙을 하는 처지다. 작물 파종시기가 당장 다음달로 다가와, 이를 놓치면 기근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