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 통합교육으로 부진아 성적 향상 ‘효과’
한국 - 수준별 이동수업으로 하위권 ‘역효과’
핀란드 ‘국가시험’ 고3까지 단 두번, 한국서는 일제고사로 ‘낙오자’ 늘어
“경쟁은 경쟁을 낳아 결국 유치원생들까지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게 될 것이다. 학교는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교양을 쌓는 과정이고, 경쟁은 좋은 시민이 된 다음의 일이다.” 이상주의에 젖은 어느 교육 운동가의 주장 같겠지만,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학업성취도 국제비교(PISA)에서 해마다 1위를 놓치지 않는 핀란드의 전 국가교육청장 에르키 아호가 한 말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 10일 오늘날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교육강국 핀란드의 성공비결과 핀란드에서 배울 점에 대해 토론하는 ‘핀란드 교육정책’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핀란드 교육연구원장인 요니 발리에르 교수가 ‘핀란드의 교육시스템, 개혁정책, 미래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핀란드의 교육정책과 최근 이명박 정부가 나아가고자 하는 교육방향은 극과 극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
◇ 통합교육 = 핀란드에도 1985년 이전까지는 우열반으로 나누어 가르치는 학교들이 있었다. 그러나 통합교육의 효과가 더 우수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이후부터는 우열반 편성을 금지하고 있다. 발리에르 교수는 “연구 결과 통합교육은 학습 부진아들의 성적을 향상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를 낸 반면 최우수 학생들은 통합교육이든 수준별 교육이든 항상 높은 성취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부 들어 획일화와 하향평준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대부분의 학교에서 사실상의 우열반인 수준별 이동수업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또 교육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자립형 사립고를 늘리고 특수목적고를 활성화하는 등 학교 서열화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 발리에르 교수는 “핀란드는 학교간 수준차가 그 어느 나라보다 작은 것이 특징”이라면서 “학부모에게 학교 선택권이 주어졌음에도 80% 이상의 학생이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를 택한다”고 말했다.
◇ 표준화된 평가 = 핀란드에서는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국가 표준의 성취도 평가를 치르지 않는다. 기초학교 9학년(우리나라의 중학교 3학년)때 딱 한 번 치르는 국가 시험과 인문고등학교 3학년때 치르는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제외하고는 의무적으로 치러야 하는 표준화된 시험이 없다. 발리에르 교수는 “우리는 경쟁이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개별 학교와 학생을 비교하는 전국 단위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면서 “단지 임의로 선택된 학생과 학교를 대상으로 샘플 조사를 해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해부터 전국 단위 일제고사를 도입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일제고사 도입 후 일부 학교들이 학교 평균을 끌어올리기 위해 문제아들을 쉽게 퇴학시키는 등 ‘경쟁’에 뒤처지면 버려지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영유아 보육 투자, 학생복지 = 핀란드에서는 만 6세 취학전부터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무상으로 교육이 이루어진다. 등록금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학용품, 급식, 건강 및 구강진료, 기숙사, 통학수단 등도 무상으로 제공된다. 그럼에도 대학 진학률은 60%대에 불과해 80% 후반대인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다. 학력에 따른 임금격차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작기 때문이다. 특히 핀란드는 유아기에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초등학교 이후의 성장발달 과정에서 격차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신념으로 영유아 보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따라서 1~5세 유아들을 보살피는 보육교사가 3~5명당 1명씩 배치되며, 취학전 아동들에게는 1년 동안 무상교육을 실시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등록금이 세계 2위의 살인적인 수준이며, 급식은 물론 학교준비물들도 각자가 마련해야 한다. 또 영유아 교육은 고가의 영어유치원부터 제대로 감독이 되지 않는 질 낮은 어린이집까지 각각이어서 어릴 때부터 교육환경의 격차가 아주 심하다.
◇ 교사 전문성 신뢰 = 핀란드에서 교사는 인기가 매우 높은 직업이다. 대부분 5~6년에 걸친 교사 양성교육을 통해 석사 이상의 학위를 받은 인재들이다. 핀란드에서는 학교 교육의 목적과 교과목별 교육 목표 및 원칙은 정부가 정하지만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교재를 선택하는 등의 권리는 모두 학교와 교사들이 갖는다. 특히 어떤 참고자료를 활용해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는 전적으로 교사들의 권한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가 교육파행 원인의 상당부분이 교사들의 ‘게으름과 이기주의’ 때문이라 주장하며 교원단체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또 이라크 파병 당시 전교조 교사들의 ‘반전(反戰)수업’ 등에 정부가 일일이 제동을 거는 등 수업 내용에 대해서도 간섭이 심한 편이다.
이날 세미나에서 안승문 21세기교육연구원 준비위원장은 “핀란드 교육의 성공은 1960년대부터 치밀하게 계획되고 70~80년대에 범국민적인 합의로 흔들림 없이 추진된 교육개혁 덕분”이라면서 “우리도 당파와 이해관계를 떠나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10~15년을 내다보며 교육제도에 대해 ‘큰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o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