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서 시판, 가격은 10원
라면은 지난 반세기 이상 우리 서민들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식품이다. 구불구불한 면발은 우여곡절이 많은 우리네 삶을 닮았고, 짜고 얼큰한 국물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며 생계를 이어간 우리 민족의 억척스러움과 불 같은 성질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구수한 냄새와 함께 국물을 마시는 “후루룩… 후루룩…” 하는 소리만 들어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지금과 같은 라면을 세계 최초로 발명해낸 사람은 3년 전 세상을 뜬 안도 모모후쿠 일본 닛신식품 회장이다. 안도 회장은 1958년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치킨라면’을 개발했다. 1년간 자택 실험실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연구를 거듭한 결과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은 63년 오늘 탄생했다.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은 63년 9월15일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일본 묘조식품에서 기계 2대와 기술을 도입해 라면을 만들었다. 주황색 포장지에 중량 100g인 초창기 삼양라면의 가격은 10원. 하지만 처음부터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식재료를 사서 직접 조리해 먹는 게 익숙한 소비자들이 인스턴트 식품에 거부감을 보인 탓이다. 소비자들이 마음을 열고 라면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3년이나 지나서였다. 그 사이 삼양식품 직원들이 라면을 끓이는 시범과 시식행사를 끊임없이 벌인 결과였다.
라면이 식사 대용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경쟁업체에서도 라면시장에 뛰어들었다. 롯데공업은 65년 롯데라면을 출시한 데 이어 75년 농심라면을 선보였다. 당시 코미디언 구봉서와 곽규석이 등장해 “형님 먼저 드시오” “아우 먼저 들게나” 하며 서로 라면을 양보하다가 막판에 본심을 내보이는 TV CF의 인기만큼 농심라면은 큰 히트를 쳤다. 이를 계기로 롯데공업이 사명을 아예 농심으로 교체했을 정도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라면의 강자는 삼양라면이었다. 88년 삼양라면의 시장점유율은 60%를 넘어섰고 매출액 5000억원을 달성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이를 뒤바꾼 건 89년 우지(牛脂) 파동이었다. 우지 파동은 삼양식품이 라면에 비식용 쇠기름을 썼다는 내용의 사건으로, 이로 인해 삼양식품 책임자가 구속되기도 했다. 삼양식품은 이 사건과 관련해 8년간의 긴 법정투쟁 끝에 97년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점유율이 10%대로 떨어지는 등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큰 타격을 받은 뒤였다. 반면 이 즈음부터 농심은 확고한 1위를 굳혔다.
한편 전 세계 50여 회원사들이 가입된 세계라면협회(IRM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팔린 라면의 개수는 920억개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