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공원·시멘트 川 ‘광화문 물바다’ 불렀다

김보미·정영선 기자

스며들지 못한 빗물이 수도 서울 심장부 덮쳐

상인들 “광장·청계천 탓” - 시 “한계 넘은 폭우 때문” - 전문가 “도시계획 잘못”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 광화문이 속수무책으로 물에 잠겼다. 성인 무릎까지 찬 물에 도심 교통은 마비됐고 인근 상가와 지하도는 물난리를 겪었다. 주변 상인·주민들은 “광화문 광장 조성으로 배수 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문가들은 서울 도심의 ‘불투수층(不透水層·물이 스며들지 않는 층)’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아스팔트 공원·시멘트 川 ‘광화문 물바다’ 불렀다

◇ 물에 잠긴 대한민국의 심장부 =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21일, 서울에는 259.5㎜의 집중호우가 내렸다. 광화문 일대는 하수관에 빗물이 역류, 도로로 넘쳤다. 자동차들이 속절없이 잠겼다. 청계천 산책로도 물이 차올라 출입이 금지됐다. 청진 2~3지구 문화재 발굴현장까지도 완전히 물에 잠겼다. 한바탕 난리가 난 지 이틀이 지난 23일 낮. 광화문 광장 초입에서 12년째 약국을 운영 중인 오강석씨(51)는 젖은 약을 선풍기로 말리고 있었다.

오씨는 “청와대가 지척이고 임금들도 살았던 광화문은 모든 치수의 시발점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그런데 광화문이 이렇게 물에 잠기다니 보기좋게 배신당한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오씨는 “이 일대 상인들은 ‘광화문 광장과 청계천 공사 후 물이 빠지지 않는 현상이 심해진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종문화회관 내 꽃집 주인인 김충희씨(56)도 “평소에도 철망으로 촘촘히 막힌 맨홀들 때문에 부유물이 걸려버리면 그대로 물이 역류하는 현상이 이어져왔다”면서 “여기에 이상기후에 따른 집중호우에 대비하지 못한 탓에 일어난 일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 “물길을 막은 도시개발이 문제” = 하지만 서울시는 이 같은 광화문 물난리에 대해 “지금의 빗물처리 시설로 감당할 수 없는 양의 비가 왔기 때문”이라며 천재(天災)임을 강조했다. 송경섭 서울시 물관리국장은 “시내 하수관과 빗물 펌프장은 10년꼴로 찾아오는 호우에 대비, 시간당 75㎜의 강수량을 기준으로 설계됐다”면서 “그런데 21일 오후 2시19분부터 40분간 종로구청이 측정한 비의 양은 시간당 90㎜가 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위주의 도시개발을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전문가가 많다. 박창근 관동대 교수(토목공학과)는 “최근의 도심 홍수는 예기치 못한 강우량 탓이라기보다는 빗물이 스며들 ‘물 길’이 없다는 게 근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김도년 성균관대 교수(건축공학과)도 “이번 광화문 홍수는 도시 전체가 아스팔트화돼 물이 갈 곳이 없을 때 나오는 결과를 잘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폭우로 광화문 일대뿐 아니라 마포·아현 지역의 피해가 컸던 이유도 뉴타운으로 재개발되면서 단독주택이 대부분이었던 때와 달리 물을 흡수했다가 흘려보내는 작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염형철 서울환경연합 운영위원장은 “광화문 일대는 공원 조성으로 불투수층이 넓어져 빗물이 지하수로 침투될 공간이 더욱 좁다”면서 “이 정도로 도심 한복판이 마비된 것은 도시 계획·설계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광화문 주변을 흐르는 중학천 등 2곳의 자연하천을 하수관으로만 연결시킨 게 큰 문제”라면서 “그러니 집중호우 때 좁은 하수관을 통해 빗물이 역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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