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후 인기 ‘꾀꼬리의 여왕’
“울고 왔다 울고 가는/설운 사정을 당신이 몰라주면/그 누가 알아주나요/알뜰한 당신은…/무슨 까닭에 모른 체하십니까요.” 1937년 발표되어 7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애잔한 노랫말과 구슬픈 멜로디로 감동을 주는 가수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이다.
‘외로운 가로등’ ‘울산 큰애기’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황금심(1922~2001)은 이난영·장세정 등과 함께 해방 전후 가요계를 풍미했던 1세대 여가수다. 식민지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던 황금심의 당시 인기는 오늘날의 인기가수 아이유나 걸그룹에 대한 열광 그 이상이었다.
부산 동래에서 7자매 딸부잣집의 막내로 태어난 황금심의 본명은 금동(金童)이었다. 부친이 아들에 대한 열망이 커 태어나기 전부터 사내아이 이름을 지어 놓은 것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돼 가족은 서울(당시 경성부) 청진동으로 이주해 여관을 운영했는데, 마침 이곳에 연예인들의 출입이 잦았다. 그 중 경성보통학교(지금의 덕수초등학교)를 다니던 여관집 딸 황금동의 재주를 눈여겨본 이는 가수 이화자(1917∼49)였다. 처음엔 심심풀이로 노래를 가르쳤지만 비상한 재능을 발견하고는 가수로 대성시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노래수업을 시킨다. 기획사 연습생의 원조라 하겠다.
황금동은 1936년 14세의 나이로 오케이레코드 전속가수 선발 오디션에서 1등을 차지하며 본격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당시 오케이레코드에는 이난영·장세정 같은 인기가수들이 소속돼 있어 음반 제작도 전속계약도 늦어졌다. 이때 이화자를 통해 황금동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작사가 박노홍(필명 이부풍·1914~82)이 노래 연습만 하며 불안해하던 그를 빅터레코드로 스카우트한다. 그리고 작곡가 전수린(1907~84)과 함께 ‘알뜰한 당신’을 만들어 황금심이란 예명으로 음반을 냈다. 결과는 대히트였다. 이때부터 그녀는 ‘꾀꼬리의 여왕’으로 불린다.
인기가 오르고 만인의 연인이 된 황금심의 마음을 얻은 사내는 ‘타향살이’를 부른 당대 최고의 가수 고복수(1911~72)였다. 1941년 두 사람의 결혼은 국내 최초의 연예인 스타커플로도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둘의 결혼생활은 남편 고복수의 사업이 연이어 실패하는 등 순탄치 않았다. 1972년 고혈압 합병증으로 고복수가 타계한 후 혼자 5남매를 키웠다. 남편 고복수가 “애들은 노래를 시키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장남 영준씨는 트로트 가수(히트곡 ‘정에 약한 남자’)로 부친의 뒤를 이었다. 말년까지 사업과 음악활동을 계속했던 황금심은 1996년 파킨슨병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다 2001년 7월30일 심금을 울리던 인생을 마무리했다. 향년 79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