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사무실·상가 정전 대란
사상 초유의 대규모 정전사태로 시민들이 큰 혼란을 겪었다. 15일 오후 3시부터 7시56분까지 한전이 ‘돌려막기식 단전’을 하는 바람에 전기를 공급받는 전국 1900만가구 중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350만~400만가구가 피해를 입었다.
서울 성북구 월곡동에 사는 주부 전모씨(31)는 15일 오후 3시30분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던 중 갑자기 모니터가 꺼지자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컴퓨터 고장인 줄 알았지만 거실과 방에도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월곡동 전체가 정전되었고 복구 중”이라는 방송이 나오자 그때서야 정전 사실을 알게 됐다. 집안일도 할 수 없었다. 셔츠 다림질을 포기했고, 물이 나오지 않아 설거지도 못했다. 나중에 한전이 전력 공급을 차단했다는 사실을 알고 어이가 없었다.
양천구 목5동 3단지 아파트에 사는 김주영씨(31)는 샤워 도중에 정전을 겪었다. 김씨는 “갑자기 화장실 불이 나가 급하게 비눗물만 씻고 나와 보니 집안 전체에 불이 안 들어오더라”고 말했다. 김씨는 언제쯤 전력이 복구된다는 안내방송이 없어 불안감을 느꼈다.
경기 의정부시의 한 대형 마트에서 15일 정전으로 형광등이 모두 꺼지자 직원들이 손전등을 켜 물건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날 오후 서울지역 소방서에는 구조 요청 전화가 빗발쳤다. 아파트나 고층건물의 엘리베이터에 갇힌 시민들의 전화였다. 서울 종로구 관수동 15층 상가 건물에선 갑자기 전력 공급이 중단되면서 20명이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다가 20분 만에 구조됐다. 소방방재청은 이날 오후 5시 현재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는 신고 건수가 398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서울에서 정전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한 오후 3시쯤부터 1시간 동안에만 93건의 신고가 들어왔다.
예비 발전기를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은 단전에 속수무책이었다. 경기 성남시 분당테크노파크에선 IT 및 제조업체 1000여곳이 업무를 중단했다. 경남지역에선 김해시 상동면과 한림면 등에 밀집한 제조업체들의 공장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제과·제빵 업계도 피해가 컸다. SPC그룹은 아이스크림 배스킨라빈스와 제과체인 파리바게뜨의 생산 라인이 정전되면서 제조과정에 있던 아이스크림과 빵을 전량 폐기했다.
은행도 마비 15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은행을 찾은 고객들이 시계를 보며 정전안내문을 확인하고 있다. 이날 전국 곳곳에서 예고 없이 정전이 일어나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 연합뉴스
상인들 역시 비상이 걸렸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앞 상가의 전기가 일제히 나가자 한 카페 주인은 “얼음이 녹으면 안된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는 “언제쯤 불이 들어올지 몰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공공기관도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밀집한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오후 5시30분쯤 전원이 나가면서 조명과 컴퓨터, 전화 등이 한때 모두 불통됐다. 경남교육연구정보원이 정전되면서 경남지역 18개 시·군 지역교육청과 일선 학교의 업무관리 시스템이 한때 불통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