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평화정착 제도적 장치 마련
유엔은 매우 익숙한 국제기구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유엔 회원국이 된 것은 생각만큼 오래되지 않았다. 남한은 1948년 제3차 유엔총회에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된 후 1949년 1월부터 여러 차례 유엔 가입을 신청했지만 상임이사국인 소련의 거부로 번번이 부결되곤 했다. 북한 역시 1949년 2월 가입을 신청했지만 소련 이외엔 협조해주는 나라가 별로 없어 심사조차 받지 못했다.
결국 1991년에야 남북한의 동시 유엔가입이 이루어진다. 1991년 9월17일 오후 3시30분(한국시간 18일 오후 4시30분)에 열린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유엔가입안이 159개 전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승인되고 미국 뉴욕 이스트강변에 위치한 유엔본부 앞 광장에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게양된다(사진).
이로써 1948년 유엔의 감독 아래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의 단독정부가 수립된 지 43년 만에 남과 북은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공식 인정을 받게 된다. 남북한 동시 유엔가입으로 어느 쪽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냐는 정통성 시비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됐다. 소모적 대결을 멈추고 평화정착을 위한 하나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2개의 국가로 인정된 이상 분단이라는 현실을 국제사회에 공식화한다는 부담도 적지 않았다.
한국전쟁 이후 줄곧 북한은 남북한 각각의 유엔가입을 반대해 왔다. 남북의 분단이 고착화된다는 이유였다. 이 때문에 당시 북한은 남북한 공동의 단일 의석으로 유엔에 가입하고 대표권을 교대로 갖자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남측의 입장은 달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88서울올림픽과 북방외교의 성과로 소련과 중국도 남한의 단독가입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에 북한이 끝까지 거부한다면 남한 단독으로라도 가입할 작정이었다”고 말한다.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계획을 ‘반민족적 범죄’ 행위로 비난하던 북한은 결국 남한의 단독가입을 견제하기 위해 1991년 5월 “남북한 단일의석 가입 입장을 철회한다”고 공식 발표한다. 뒤늦은 입장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남한보다 이른 7월에 유엔가입 신청을 냈고 한국은 9월 초 신청서를 제출한다. 가입신청 순서에 따라 북한은 160번째, 남한은 161번째 유엔 회원국이 됐다.
당시 남측 수석 대표인 이상옥 외무장관과 북측 수석대표인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이 각각 수락 연설을 했다. 연설에는 남북한 모두 “오늘 비록 북과 남이 따로따로 유엔에 들어왔지만 단합된 협력과 노력을 통해 평화통일을 이루자”는 다짐이 들어있었다.
남북한 유엔시대가 개막되면서 긴장완화로 인한 군비축소·국가보안법 개정 등 ‘평화의 소득’을 어떻게 누릴지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아쉽게도 남북관계는 그때보다 별반 나아진 것이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