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낙엽으로 가위바위보 놀이 해볼까

이고은 기자

▲ 동네 숲은 깊다…강우근 지음 | 철수와영희 | 192쪽 | 1만3000원

미처 몰랐다. ‘자연놀이’가 이렇게 흥미진진한 것인지.

토끼풀잎(클로버)은 만능 장난감이다. 잎자루가 긴 토끼풀잎으로는 안경도, 머리띠도, 팔찌도 만들 수 있다. 민들레 꽃대에 이파리만 연결하면 즉석 바람개비가 완성된다. 가을길에 구르는 낙엽도 만만치 않다. 민숭민숭한 가위바위보 놀이도 낙엽만 있으면 더욱 재미나다. 은행잎은 가위, 느티나무 잎은 바위, 단풍나무 잎은 보자기다. 형형색색의 낙엽을 오리고 붙이면 토끼, 쥐, 여우 등 각종 동물 인형도 ‘뚝딱’ 만들 수 있다.

[책과 삶]낙엽으로 가위바위보 놀이 해볼까

강우근의 <동네 숲은 깊다>는 현대인들이 잊고 사는 자연에서의 ‘유희’를 일깨워주는 책이다. 저자 강우근은 귀농을 꿈꾸지만 용기가 없어 꿈을 이루지 못한 어린이책 작가다. 내내 도시를 떠날 궁리만 하던 그는 도시 한가운데서도 자연과 만나는 방법을 터득한다. 집 안의 베란다와 텃밭, 아파트 뒤편의 작은 숲, 심지어는 하수구 같은 동네 개울물까지…. 그가 자연 속을 여행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찾은 곳은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일상 속이다.

책은 일종의 ‘자연놀이 설명서’다. 동네 곳곳에서의 자연놀이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저자가 동네에서 만난 동식물은 약 300종에 이른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 모두 똑같게 생긴 듯 생소한 것들이지만, 자세히 보면 각자의 이름도 있고 모양새도 다르게 생겼다.

저자와 함께 봄나물을 캐러 간 아이들은 냉이를 찾다가 냉이와 비슷한 모양의 다양한 풀들을 발견한다. 꽃다지, 지칭개, 망초….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냉이와 닮았다. 벌레함정을 만들어 벌레 잡기에 나서서는 모가슴 소똥풍뎅이, 혹가슴 검정 소똥풍뎅이와 꼬마검정 송장벌레, 수중다리 송장벌레가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도 배운다.

저자는 자연을 무조건 보호하고 감싸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네잎토끼풀을 찾으러 가서 “꽃을 꺾으면 자연을 망치게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는 “토끼풀과 같이 사람 사는 둘레에 적응해 살아가는 들풀들은 산속에 사는 토종 야생화와 달리 어느 정도 사람 손을 타야 더 잘 자란다”고 일러준다. 그렇다고 인간의 입맛에 맞게 조율하고 재배치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개울에 도롱뇽과 올챙이들을 잡으러 가서, 청계천처럼 반듯하게 바꾸려고 파헤쳐진 모습을 보고는 4대강 공사를 떠올린다.

“숲도 만들고 개울도 만들고 강도 만들고… 자연을 사람이 만들 수 있다는 거꾸로 뒤집어진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제2의 4대강, 제2의 청계천이 이름만 바뀔 뿐 계속될 것이다.”

저자의 시선은 땅과 거의 수평을 이룬다.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잰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자연을 바라본다. 저자는 무균실에 갇혀 살고자 하는 현대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축축하고 비릿한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움트는 생명과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느낀다. 그래야 살아있는 자연이 보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저자의 관찰력이 돋보이는 섬세한 삽화들이 수록됐다. 자연도감 수준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보고 있노라면, 자본이 만들어낸 욕망으로 그득한 사회가 더욱 천박하고 우스워 보인다.

[책과 삶]낙엽으로 가위바위보 놀이 해볼까

Today`s HOT
우크라이난 군인 추모의 벽.. 나토 사무 총장이 방문하다. 홍수로 침수된 말레이시아 샤알람 제 34주년, 독일 통일의 날 레바논에서 대피하는 그리스 국민들
멕시코의 여성 대통령 클라우디아 세인바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평화 시위
베네수엘라의 10월에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보트 전복사건.. 다수의 희생자 발생한 콩고민주공화국
허리케인 헬레네로 인한 미국의 마을 모습 인도의 간디 추모식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더운 날 칠레의 모아이석상, 다시 한 번 사람들의 관심을 받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