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저주6] 장애인을 배제하는 세상에 소나기 펀치를 날리는 박현진 씨를 만나다
‘병신…’
박현진 씨의 손가락이 빨라졌다. 트위터에 ‘병신’이라는 단어를 올린 사람은 자신의 프로필에 한 유명 진보매체의 기자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밝혀놓고 있었다. 때는 2011년 6월. ‘병신’이라는 단어는 트위터에서 김여진 씨를 ‘밥집 아줌마처럼 생긴 여진족’이라고 이야기한, 커밍아웃 패션 칼럼니스트 황의건 씨를 향한 것이었다. 박 씨는 그 기자에게 ‘장애인 비하적인 표현’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것은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뿐이다.
장애인 청년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전직 비마이너(Be Minor) 기자 박현진(36) 씨를 만났다. 청년들과 함께 저주의 굿판을 벌여보는 여섯 번째 시간. 2030의 막바지에 접어든 박씨는 학원 강사, 기간제 교사 등을 거쳐 장애인 전문매체 비마이너의 기자로 일했다. 최근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기자를 그만두고 시민단체 취업을 목표로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모범생처럼 보이는 박현진 씨지만 장애인이 처한 불평등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얌전한 그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박씨는 뇌병변 장애 5급이다. 어렸을 때 다리를 절었고, 비장애인에 비해 발음이 명확하지 못한 면은 있었지만 의사소통에 큰 장애는 없었다. 흔히 말하는 경증 장애인이다.
비마이너 기자 시절
Prologue
‘무지’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
바야흐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앞다퉈 청년 정치인을 내세우는 2012년 지금은 ‘청년세대론’의 호황기다. 지난 3월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 후보경선에는 골형성부전증으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후보가 등장하기도 했다.(이후 그는 본선에서 떨어졌다) 2007년 <88만원 세대>가 나온 이후 청년 세대 문제가 사회 전면에 등장했고, 언론과 출판사는 청년세대 담론을 쏟아냈다. ‘청년세대’라는 담론의 홍수 속에 ‘청년 장애인’ 문제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병신’이라는 표현 때문에 트위터에서 설전을 벌인 적이 있죠.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라는 점 때문에 폭트(폭풍트윗)하시는 것을 보고 전투력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어요.
그냥 일반 사람이면 그렇게까지 따지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기자라는 사람이 그런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쓴다는 걸 보고 그냥 지나치기 어렵더라고요. 그것도 대표적인 ‘진보 매체’ 기자가요. 그래서 그게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김여진을 욕했다고 해서 다시 그 사람을 그런 식으로 욕한다는 게 정당하지 않다고 멘션을 보냈는데 그분이 펄펄 뛰었어요. 자기는 장애인 비하로 얘기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누구나 그렇게 얘기를 하죠. 그래서 당신이 그랬다는 게 아니라 그런 의미가 있으니까 그 단어를 쓰지 않아야 한다고 했지만 그분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 어휘에 대해 ‘언중’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면서요.
-어떻게 보면 욕 중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고,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벼든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생각하죠. 병신이라는 단어에 문제를 제기하면 ‘어, 난 그런 의도가 아닌데…’ 이러면서 펄펄 뛰는 부분이 있고요. 나꼼수 비키니 논란도 그렇잖아요. ‘여성비하측면에서 얘기한 게 아닌데 너네는 왜 그러느냐’ 라는 식의…
-결국 그 기자에게 사과를 받으셨나요?
아뇨. 오히려 저에게 본인을 모독했다면서 사과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뜻으로 한 게 아닌데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식으로요. 그분은 "그 어휘를 안 쓰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는 것처럼 말하는 게 우습다"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본질을 피해가는 거죠. 예전에 민주노총 위원장이 노동절 때 이명박 정권을 ‘반신불수’라고 해서 장애인계의 항의를 받은 적도 있잖아요. 민노총이 나중에서야 인정했지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보여주는거였죠.
-특히 진보진영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데에 더 분개하셨군요.
약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기보다는 인식하고는 있는데 누가 그런 관점을 비판하거나 지적하면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문제죠. 자기는 이미 잘 하고 있는데 왜 그럴까 하는… 그리고 특히 ‘병신’이라는 단어가 특정계층 비하적인 다른 말보다 더 쉽게 쓰인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트위터에서 ‘이 호모 같은 XX야’라고 하는 것에 문제제기한 적이 있어요. 그런 단어가 비하적인 의미로 쓰이는 것을 비판하면 더러 인정하는데 '병신'에 대해서는 왜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하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사람들이 ‘병맛’이라고 얘기할 때 여전히 (마음에) 걸리죠. (‘병맛’이라는 용어는 인터넷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의 카툰연재 갤러리에 처음 등장해 온라인에서 다양하게 변용되는 말. ‘병신 같은 맛’의 줄임말로 이야기가 개연성 없이 황당하게 전개되거나 그렇게 결말에 이르는 것을 뜻함.)
-주로 소수자나 약자 비하적인 표현을 접하면 이렇게 전투력을 불태우는 편이신가요?
요새는 많이 안 그런 편이지만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욕이라는 게 어쨌든 사회의 소수자들을 비하하면서 쓰는 거니까요. 여자나 장애인이나 그런 사회적으로 약한 존재를 비하하면서 쓰는 건데 그 중에서도 병신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쓰기도 하고… 특히 장애인을 언급할 때에 그런 표현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장애우’라는 용어 자체도 문제가 많잖아요. 장애인 스스로 장애우라는 말을 쓸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을 보면 일단 장애인을 너무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거나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장애에 대한 인식이 너무 극단적이죠. 한쪽에서는 장애우라고 부르면서 아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 수 없는 존재로 파악하는 측면이 아직 남아있어요.
-TV나 일상 대화에서 흔히 하는 표현들이 때로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을 것 같아요.
요새는 예전처럼 그렇게 막 따지고 그렇지는 않지만…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죠. 예전에 장애인 재단이 만드는 ‘틈’이라는 잡지에서 그런 용어 사용과 관련한 토론회를 열었을 때, 나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기도 했어요. 또 개그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에서 여성의 외모를 비하하면서 웃음을 준다거나 <무한도전>에서 서로 총을 쏴서 죽이는 게임을 했는데 그게 전쟁을 놀이처럼 희화화하는 것처럼 느껴져 불편하다거나 그런 것들이었죠. 흔히 느낄만한 그런 것들을 한번씩 트위터에 올리는데 반응은 보통 ‘왜 예능을 예능으로 보지 못하고 까탈스럽게 그러냐’고 하죠. (웃음) 나꼼수 비키니 시위 논란 때랑 비슷한 거죠. ‘그게 뭐 성희롱이냐. 너무 까탈스러워서 그렇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여성이나 장애자, 또는 사회적 약자나 인권에 대한 관심과 전투력을 키운 것은 역시 장애인문제 전문 매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인가요?
장애인 ‘운동판’에 들어가서 경험한 것들이 영향을 미치기는 한 것 같아요. 인권 교육 관련해 취재가고 그러면서 많이 배우고, 눈에 안 보이는 부분까지 보이고 그러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트위터의 힘도 있었고요. 운동권 사람들을 많이 팔로하고 그러다 보니 이전에 못 보던 것들을 많이 보게 된 것도 있고요. SNS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트위터다’라고 트위터에 쓸 정도로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장애인 매체 ‘비마이너’에서 일한 것은 원래 장애인이나 소수자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였나요?
아뇨. 특별히 그렇지는 않고요. 그냥 신문 같은 것을 보면서 계속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정도죠. 제가 한참 학원 강사를 하고 있다가 그걸 계속 오래할 수는 없겠다고 판단해서 다른 데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였죠. 마침 장애인 단체에서 신문기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그때 누가 제게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심 많고 글쓰기에 관심 있으면 시민단체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요. 그때는 기자할 생각은 못 했었고요. 일단 시민단체 쪽을 알아보려고 했는데 그런 쪽 구인구직이 어디에 올라오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시민단체사회연대회의나 진보네트워크에 실리는 것을 알고서 거기에서 보게 됐어요. 마침 비마이너에서 기자를 모집한다고 올라왔는데 신문기자 일도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하게 됐죠.
Chp. 1 – 장애인 문제에 눈을 뜨다
좌파 운동권매체 비마이너 기자 시절
비마이너 기자 시절
-기자로 일했던 비마이너는 정부 비판에 적극적인 ‘좌파 운동권 장애인 매체’라고 보면 되나요?
그렇죠. 빨갱이 매체죠. (웃음) 장애인 뉴스매체 중에 가장 유명한 게 에이블 뉴스예요. 네이버에도 뜨죠. 비마이너는 기존 매체 중에 장애인 관련 집회나 시위들을 전문적으로 다뤄 주는 신문사가 없다고 생각을 해서 만든 거예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상임공동대표이자 노들 장애인야간학교 교장인 박경석 선생님 주도로 설립됐죠. 일종의 사회적 기업이죠. 기존의 장애인 매체가 주로 복지에 주목해 정부 쪽 관점을 다루는데 반해 집회나 시위를 적극적으로 기사화했어요. 저는 창간 즈음인 2009년 6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일했고요.
-주로 어떤 기사를 쓰셨어요?
여성이랑 인권 분야를 맡아서 썼어요. 그런데 굳이 그렇게 한정되지는 않고, 제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니까 인터뷰도 했었고… 사실 그 전에 소위 사회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제가 스스로 약간 진보 쪽이라고 생각했지만 되게 추상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소위 운동권이라는 장에 들어와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신문에서 접하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정말 다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또 인권 교육에 대한 취재를 가서 인권 교육을 들으면서 제가 더 많이 인권 감수성이 생긴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비마이너에서 활동한 2년이란 기간이 정말 제 인생을 180도 전환시킨 계기라고 할 수 있죠.
<박현진 씨는 2년 여 동안 255건의 기사를 썼다.>
-기사를 많이 쓰셨더라고요. 기획기사 같은 것을 보면 정말 많이 공부해서 장애인 이슈 전반을 정리한 것 같아요. 현장 사진도 직접 담으신 것 같고요.
인터넷 신문이고 매일매일 올려야 되니까… (웃음) 연재했던 <초보 박기자의 장애학 톱아보기> 같은 기사는 제가 장애학 수업을 잠깐 들었는데 그 이후로 편집국장이 장애학에 대한 기사를 써보라고 그래서 막 못한다고 그러다가 제가 책 찾아서 공부하면서 쓰게 된 거고요. (웃음) 사진은 잘 못 찍었는데, 어차피 열악해서 사진기자, 취재기자로 나눌 수가 없으니 부국장으로 계신 분이 사진을 잘 찍으셔서 초반에 조금 배웠어요. 그래서 잘은 못 찍지만 취재 다니면서 어쨌든 사진을 찍어서 제가 올리고…
-그래도 ‘장애학’ 전반을 다룬다는 게 관련 분야 학자의 기고글로 기획할 수 있는 것인데 직접 쓰셨다는 것을 보면 정말 성실하게 공부하는 기자였다고 느껴져요. 댓글을 보면 기사 반응도 그렇고요.
사실 장애학에 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하려면 학자의 기고를 받는 게 맞겠죠. 제가 그 기획물을 연재했던 것은 ‘장애학은 이런 것이다’라는 정제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신 저도 같이 ‘장애학’을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했어요. 그 연재기획이나 기사들을 저 혼자 기획해서 쓴 것은 아니고요. 다 편집국에서 같이 논의하고 쓴 거고요. 창간 기사 중에 장애인 주거권에 관해서 취재해서 쓴 부분이 있는데, 사실 한번 홈페이지가 날라가서 사람들을 되게 많이 만나보고 쓴 그 부분이 날라가서 안타까워요. 어쨌든 편집국에서 다양한 시도들을 했고, 그래서 그런 취재나 기획들을 하게 됐습니다.
-원래 청년저주 시리즈는 청년 문제를 다루는 것이거든요. 취업, 자립, 결혼 같은 장애인 청년 세대의 문제에 대해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장애인에게는 ‘청년’ 이슈를 얘기하기 사실 어렵죠. 전체 장애인의 절반 가량이 초졸인 현실이니 대학진학율이 80%가 넘는 비장애인과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경증 장애인과 중증 장애인이 처한 상황이 많이 다르고요. 경증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사실상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니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취업’을 생각해 볼 여지가 있죠. 그런데 중증 장애인은 취업이나 자립을 생각할 수 있는 단계 이전에 기본적인 ‘생존’이 보장이 안 되는 상태거든요. 일반적인 ‘청년’ 문제로 장애인을 보기가 어렵죠.
-경증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같이 경쟁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고, 중증 장애인은 취학이나 경제적 자립 같은 문제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보시는 거군요?
그렇죠. 장애인 사이에서도 다시 계급이 갈리는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증 장애인 분들이 어쨌든 취업을 걱정한다면 중증 장애인은 아예 취업을 생각하지는 못하고 어떻게 하면 나라에서 조금 더 보조를 받아서 살 수 있을까 생각해요. 왜냐면 지금 나오는 장애 연금이나 기타 보조가 너무 약하니까요. 그것으로 살 수가 없으니까 일을 하고 싶은데 일을 하면 (기초생활)수급권이 박탈되니까 결국 생존의 문제로 다시 넘어가는 거죠.
-그럼 비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에게 취업하고 결혼해서 부모로부터 자립하고 독립하는 사이클이 애초부터 출발하기조차 힘든 상황인 거네요.
네. 애초에 연애나 결혼을 고민하는 그런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해요. 독립은 말할 것도 없고요. 탈시설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중증장애인 분들을 취재해 보면 일단 시설에 있는 사람들은 시설에서 나와서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은데 그게 막막하죠. 왜냐면 시설에서도 24시간 누가 케어해 주는 건 아닌데 느낌상 24시간 동안 선생님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데 지역사회에 나오면 과연 ‘내가 혼자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죠. 가족들은 ‘네가 어떻게 혼자 나가서 살아?’라고 생각하고요. ‘내가 나가서 과연 혼자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결국은 그냥 집에 갇혀서 사는 거죠. 시설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사는 재가 장애인도 집이라는 덫에 갇혀있다고 봐요. 방이 그냥 하나의 감옥이 되면서 취업도 못하고 뭐도 못하고 그렇다고 가족은 24시간 붙어있을 수도 없는 거고 그런 차원인 거예요.
-중증 장애인 입장에서는 취업을 생각할 수라도 있는 경증 장애인이 본인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처지라고 생각하겠어요. 말씀하신 ‘장애인 내 계급 차이’를 상정하면 청년 세대의 문제로 접근할 때도 나눠서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렇죠. 이런 차원인 거예요. 제가 중증 장애인 친구를 만나면 그 친구는 저를 부러워하는 측면이 있어요. 어쨌든 저는 경증이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고 이런 저런 일을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거죠. 저는 그런 생각을 갖지 않지만 사실 한 쪽 구석에서는 어쨌든 이 친구는 일을 안 해도 사회에서 일정부분 (지원이) 나오고… 그런데 저는 경증 장애라고는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장애이거든요. 그렇다 보니 제 입장에서는 구직할 때에도 (다른 이유가 아니라) 장애 때문에 뭔가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안 뽑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경증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중증 장애인을 바라볼 때 이게 같은 장애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중증 장애인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거죠. 그게 충분히 이해도 갑니다.
Chp. 2 – 소고기 등급 나누듯 장애 등급 나누기?
박 기자가 발로 뛰며 생각한 장애인 문제
“일반 시민들 통행 불편하지 않게 횡단보도 앞은 길을 터주고…” ‘일반 시민들’이라… ‘장애인’은 ‘일반 시민’에 속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집회하는 사람은 ‘일반 시민’에 속하지 않는 것인가.
- <[초보 박기자와 좌충우돌 장애학 톺아보기4] 장애인은 어떻게 사회로부터 배제됐나?> 기사 中, 2010. 05. 24.
-경증 장애와 중증 장애가 어떻게 나뉘어요?
보통 4, 5, 6급이 경증, 1, 2, 3 급이 중증, 이렇게 나뉘어요. 그런데 그 기준이 어디까지가 5급이고 어디까지가 6급이냐, 이런 논쟁이 많아요. 장애인에 등급을 매기는 것에 대한 폐지론이 많이 거론되요. 국가에서는 그 기준이 너무 허술하니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기준을) 다시 세우겠다고 했다가 크게 반발이 일어났었죠. 걷지도 못하는데 급수 기준을 다시 세운 뒤로 정말 거의 혼수상태에서만 1급이고 나머지는 2급이 돼버리니까 문제가 많았죠. 1급에서 활동비를 받던 사람이 갑자기 2급으로 떨어진 거예요. 2급은 활동 보조를 못 받거든요. 분명히 아무 것도 못하는데 활동 보조가 떨어져 버린 거죠. 지금도 아마 장애 등급 재심사 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을 텐데 그때도 엄청 많이 시위했어요. 국민연금공단 앞에 가서 밤샘 농성하고 그랬던 이유가 ‘누가 무슨 기준으로 소고기 등급 나누듯이 장애인 등급을 나누냐’고 얘기하고 주장했던 거죠. 그때 제가 장애인 등급 재심사 취재를 갔었는데 장애 당사자가 허리를 못 쓰는데도 의사 소견이 '의학적으로 허리를 못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면 의사 판단으로 장애 등급을 정해야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너무 모순이 많았어요.
-장애인을 문제를 다루는데 신체 상태에 따라 등급을 나눠서 국가가 차등적으로 지원을 하는 방식, 그런 관점 자체는 보편적인 건가요?
아뇨.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아요. 제가 취재했을 때 보면 어느 정도 복지 제도가 있는 다른 나라에서는 어쨌든 장애가 있고 이 사람이 못 움직인다고 판단하면 활동 보조는 다 어느 정도 지원해 줘요. 예전에 일본 분이 오셔서 이 문제에 대해서 같이 취재하고 그랬는데 일본에서도 (장애 판정 기준이) 되게 세분돼서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활동 보조를 받는 것에서 나아가 24시간 받을 수도 있는데 한국은 굉장히 열악하다고 얘기를 했어요. 사실 3, 4급 다 빼고 1, 2급만 생각해 보세요. 1급과 2급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느냐가 되게 모호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1급만 활동 보조를 받을 수 있다는 거죠. 2급이라고 해도 자기 혼자 밥을 못 먹고 그럴 수도 있는데도요.
-그러면 2급은 정부 지원이 아니라 자기 돈을 내고 보조인을 써야겠네요?
네. 그런데 그게 너무 비싸니까 하기 어렵죠. 그러니까 1급과 2급을 어떻게 나누냐는 거예요. 이번에 재심사하면서 1급이시던 분들이 무더기로 2급이 됐는데 제가 그때 장애아동 한 명을 취재하러 갔었어요. 그 애가 기기만 할 뿐 걷지를 못하는데 2급이 됐어요. 무엇을 가지고 2급이냐는 거죠.
-활동보조인제도는 1급 장애가 있어야지만 받을 수 있는 거예요?
1급도 다 받을 수는 없고 일부만 받아요. 독거인 경우라거나 그런 특례에만 해당이 되고요. 시간도 너무 적어서 문제죠. 월 180시간 받으면 하루에 3시간이고 240시간 받으면 하루 6시간인데 240시간은 굉장히 특례인 경우에만 받을 수 있어요. 한 달에 180시간 정도면 하루에 세네 시간 밖에 못 받는 거죠. 그러면 화장실 일, 씻기고 밥 먹이고 그런 건데 그게 세 끼 밥을 먹으면 끝나는 시간이니까 어디를 갈 수도 없죠. 그런데 또 그 분들은 되게 천천히 식사하시잖아요. 그래도 겨우 세 끼 밥만 먹고 살 수가 없으니까 활동보조시간을 더 늘리려고 하는데 국가는 ‘예산이 없다’, 내지는 ‘지금 예산이 없으니까 자부담을 늘리겠다’ 이러면서 기초생활수급자 말고는 돈을 내야 하는 시스템을 작동하는 거죠.
-예산을 늘려서 활동보조시간을 늘리자는 움직임이 있을 수밖에 없겠는데요.
네. 장애인 단체에서는 한발 더 나가서 장애등급폐지를 주장하고 있고 지자체는 일단 예산을 더 늘려서 활동보조시간을 늘린다고 하는 입장이에요. 그래서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게 이 정도라면 지자체가 더 보장하라’고 주장하면서 지자체를 돌면서 시위를 했었죠. 서울 시내 무슨 구에선가 활동보조인서비스 시간을 몇 시간 추가해주겠다고 한 곳도 있었어요. 그런데 무슨 구는 전혀 못 하겠다고 그래서 전장연에서 찾아가서 시위하고 싸우고 그랬어요. ‘우리 구는 예산이 없어서 못하겠다’는 입장이었죠. 정부는 늘 예산이 없다고 합니다.
-복지 예산을 어디에 우선적으로 쓰느냐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보수 관점을 가진 제 동생에게 그런 얘기를 하면 이렇게 말해요. ‘누나 얘기는 알겠는데 어떻게 장애인들에게만 예산을 쓰겠어’라고요. 제 동생도 그렇고 일반적인 사람들도 ‘그래. 장애인 문제가 있지. 그런데 뭐 장애인만 어려운가? 누구도 어렵고 누구도 어려운데… 어떻게 이 사람에게만 (지원하겠어)’ 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우선순위가 중요하다면 4대강에는 24조 쓸 수 있고 경인운하나 어디에도 얼마를 쓰고 디자인 서울에도 얼마 정도를 쓸 수 있는데 왜 그러면 여기에다가는 못 쓰냐는 거죠. 왜 우선순위가 그렇게 갈리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중증 장애인은 기본적인 생존권 보장이 이슈라면, 경증 장애인은 적어도 취업이나 자립 같은 청년 문제를 상대적으로 더 고민하고 경험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반면에 정부 지원이 없기 때문에 비장애인과 사실상 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을 얘기하셨고요. 경증 장애인에게는 국가에서 아무런 지원이 안 나오나요?
저 같은 (경증 장애인의) 경우에는 핸드폰 요금이 할인이 된다든가, 기차 탈 때 동반 1인까지는 아니지만 본인은 할인이 된다든가 하는 건 있죠.
-할인은 얼마나?
한 30%? 옛날에는 50%였는데 30%로 줄었어요. 기차도 주말에 (할인이) 됐었는데 지금은 안 되고요. 그 정도이지 특별히 크게 뭐…
-복지 지원으로 크게 도움 되는 건 없네요.
연금이나 그런 부분이 없거든요. 어쨌든 중증 장애인은 그런 것들을 받지만… 구직하는 데 장애인 의무고용률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도 잘 안 지켜지고 있어요. (장애인을 고용하는 대신) 대부분 벌금을 내고 말죠.
-그러면 경증 장애인은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구직이든 뭐든 국가가 지원해주는 것을 따져보면 거의 똑같은 조건이네요.
그렇죠. 취업을 하려고 하면 기업 쪽에서는 아무리 경증이든 중증이든 그냥 장애인인 거에요. 그래서 웬만하면 꺼려하는 거고요. 한 번은 아는 중증 장애인 분이 제게 이런 말을 했어요. 그 친구가 걷고 말하는 것을 어느 정도 하는데 기초생활수급권 자격을 어떻게 우연히 받게 됐어요. 그래도 일을 하고 싶어서 일자리를 알아보는데 잘 안되니까 제게 상담하면서 어떻게 보면 순진한 얘기를 했어요. "장애인이니까 (취직해서) 들어가면 장애인에 대한 어떤 배려를 해주지 않나요?"라고요. 그래서 저는 "아니, 그렇게 일을 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뽑을 수는 있지만 당신이 장애인이니까 조금 더 늦어도 그렇게 (배려)해주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러면 경증이 더 살기가 좋은 것인지 중증이 더 살기 좋은 것인지를 생각한다는 건 어려운 문제네요. 좋다기보다, 어느 쪽이 덜 어려운 지를 따져본다는 게 말이죠.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중증 장애인과 경증 장애인이 문제를 인식하는 관점이나 체감 수준이 다르니까요. 중증 장애인 분들의 입장에서는 경증이면 어쨌든 자기가 가고 싶은 데도 가고 그럴 수 있지 않냐고 하는데요. 그렇게 따지면 화장실도 혼자 못 가시는 분들은 화장실 일을 다 해줘야 되는데 어쨌든 화장실에서 혼자 볼 일을 보는 것조차 경증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축복이라고 볼 수 있죠. 반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어요. 내가 지금 돈이 없으면 돈 많은 사람은 다 행복할 것 같지만 돈 많은 사람들은 다시 그 안에서 고민이 있듯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가려지는 '위계'도 마찬가지거든요. 경증이건 중증이건 어쨌든 그냥 다 장애인에 속하는 거지만 사실 그 안에서 또 갈릴 수 있는 거죠.
-경증 장애인이 빈곤 문제에 노출되면 더 힘들지 않아요? 물론 부모를 잘 만난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보면 구직도 어렵고 국가의 보조도 없는 편이고요. 그런 경우에는 중증 장애인보다 어렵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더 어렵다고 할 수는 없어요. 그런 논리가 성립하려면 국가가 중증 장애인을 충분히 보조해 주느냐를 살펴봐야 합니다. 보조가 충분하다면 그것을 받지 못하는 경증 장애인이 더 어렵다고 하겠는데, 현실은 국가에서 중증장애인을 보조해 줘봤자 그 돈으로 살 수가 없거든요. 일단 중증 장애인은 약값을 굉장히 많이 씁니다. 약값으로 다 날라가는 셈이니 빈곤 상태의 중증 장애인이 기본적인 삶을 누릴 여건 자체가 갖춰지지 않았다고 봐야죠.
-국가 보조만으로 살 수 없고 그렇다고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기에는 당장 일을 하기도 어렵고, 그러면 어떻게 살아요?
그러니까 자살하는 거잖아요. 가난한 장애인이었던 최옥란 씨도 그런 사례죠. 그분이 1급 장애인이고 약값이 한 달에 이십 몇 만원씩 나오고 그래서 노점상이라도 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생계비) 수급권이 박탈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보건복지부 장관 앞에 가서 시위하고 싸우고 그러다가 결국 자살했어요. 매년 3월 26일마다 그 분을 기리는 행사 같은 것을 장애인 단체에서 해요. 그러니까 경증 장애인이 중증 장애인에 비해서 보조가 없으니 더 힘든 것 아니냐고 말할 수가 없는 게 지금 중증 장애인들도 그만큼 보조가 안 돼서 혼자 살 수가 없거든요.
-정부 지원이 부족한 점들을 이야기하자면 예전에 장애인 아들이 기초생활수급권을 받지 못해서 자살한 아버지 사건도 생각나는데요.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이었나요?
네. 자기가 있으면 수급이 안되니까 아버지가 자살했죠. 2011년이었을 거예요. 지금 그런 구조입니다. 그런데 (관련) 공청회에서 복지를 운운하면서도 꼭 얘기하는 게 부정수급자가 어쩌구 저쩌구예요. 항상 시혜적 관점에서 ‘우리가 예산을 너네한테 주는데 이게 부정수급자가 있으니까 뭐는 안 돼’ 이런 식으로 얘기해요. 2011년에 박근혜 의원이 전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얘기할 때 공청회에 갔었는데 그때도 나오는 얘기는 부정수급자예요. 그러니까 항상 부정 수급을 염두에 두면서 ‘이게 무슨 예산 낭비다’라고 얘기하는 거죠.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는 식의 조건이 붙는 거죠.
-부정수급자를 염두에 두면서 시혜적 관점으로 수급권을 제공하는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보시는 거네요.
네. 수급권을 받기 위한 조건인 부양의무자 조항에 문제가 많아요. 빈곤사회연대에서도 지금 계속 싸우는 이유가 부양의무자 조항 때문이거든요. 자식과 연락이 아예 안 되는데 자식이 부양의무자로 돼있으니까 수급자가 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게 빈곤 사각지대에 내몰린 분이 400만 명이라고 해요. 먹고 살 길이 없는데 (기초생활비 지원은) 안 되니까 내몰리는 거죠. 그 아버지도 자기가 죽음으로써 애가 고아가 되면 수급권이 나오니까 자살한 거고요.
-다시 돌아가자면, 국가의 지원이 이렇게 미비한 상태에서 빈곤 문제에 처했을 때 중증 장애인 입장에서는 그래도 경증이 낫다고 보는 거네요.
네. 아무래도 가고 싶은데 가고 뭐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그럴 수 있다는 게 (다르니까요). 제가 지금 인터뷰 전에 덕수궁에서 사진전을 보고 왔는데 그때 내려오면서 ‘여기 엘리베이터는 어딨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화생활, 극장 한 번 가는 게 어려운 상황이죠. ‘도가니’ 영화가 되게 열풍이었지만 정작 청각장애인 분들은 자막 나오는 데가 별로 없어서 ‘도가니’ 영화를 잘 볼 수 없었어요. 자막이 있는 곳도 하루에 한 편인가 나오는 수준이었고…
Chp. 3 – 장애인에게 ‘청년’은 없다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나?
(중략)
대부분 언론에서 장애인의 성공담을 장애인 개인의 의지와 도전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쉽다. 소위 ‘성공’한 장애인을 다룬다면 그가 성공하기까지 어떤 사회적 제도의 뒷받침이 있었는지에도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리고 장애를 개인의 ‘극복’문제로만 보지 말고 장애인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의 문제점도 같이 얘기돼야 한다.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장애는 자신의 의지로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극복되어야 할 것은 사회구조이다. 장애의 극복을 강요하는 이 찌질한 사회여~!
- <[초보 박기자와 좌충우돌 장애학 톺아보기3] 장애, 스스로 극복하고 와라, 그럼 박수쳐줄게?> 기사 中, 2010. 03. 23.
-결국 중증과 경증을 나눠서 보면 이렇게 볼 수 있겠네요. 중증 장애인일 때는 청년이든 청년이 아니든 이 사람들이 기본적인 인간적 삶의 조건을 실현할 수 있도록 어떠한 부모를 만나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경증 장애인은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비장애인에 비해 핸디캡을 사회적으로 인정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인정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는데…
-아니면, ‘뽑아줬으니까 당신도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해라’ 이렇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가 장애인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자본주의라는 게 똑같이 경쟁해야 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똑같은 능력을 보여줄 것 같으니까 (장애인이더라도) 뽑는 거죠.
-그렇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지는 않잖아요. 개인적으로 핸디캡이 인정돼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죠. 그런데 그게 너무 이론적인 접근일 수 있다는 거죠. 핸디캡이 인정되면 당연히 좋겠죠. 사실 그 정도 인정해줄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시스템이어야 한다는 게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지적장애인 분들을 취재한 적이 있었어요. (지적장애) 3급 정도면 웬만큼 일하거든요. 그때 취재한 분 중에 한 분이 IBM에 다니세요. 웬만큼 그냥 회사 측에서 배려해서 그 일을 하시는 거죠. 지적장애인 분들이 되게 낮은 지능이라고 생각하는데 3급 정도면 웬만한 일들은 다 하시거든요. 영상편집도 하시고 그러면서 그 회사에 다니시는데 그런 회사 정도면 그런 사례가 있죠. 그런데 사실 그렇게 해주는 회사는 거의 없어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아지려고 하는 것보다 장애인의 핸디캡을 인정해주면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죠?
맞아요. 예전에 W라는 티비 프로그램에서 한 번은 시각 장애인 요리사가 나왔는데 그 사례가 그런 필요성을 너무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 요리사의 상사가 나와서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일반 비장애인을 뽑아도 일에 익숙해지려면 적응 기간이 필요한 것처럼 그 사람도 적응 기간을 준 거다. 자기가 배려한 게 아니다’ 라고요. 그런 것처럼 각각의 핸디캡을 배려하는 문화가 장애인에 대해서건 비장애인에 대해서건 있으면 좋은데 그렇게 되기가 어려운 거죠. 그렇게 하는 회사가 거의 없어요.
-결국 제도나 사회 환경이 장애를 배려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하는 것이지 장애를 가진 사람이 경증이든 중증이든 그냥 ‘우리는 대등한 능력이 있다. 그런 것 필요 없다. 뽑아만 달라’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네요.
그렇긴 한데 사실 이런 얘기를 하면 일반적으로 제 동생과 같은 반응이 나오는 거죠. ‘장애인만 배려하고 어떻게 사냐’는 얘기요.
-물론 우선순위가 있는 거겠죠. 빈곤문제를 비롯해서 국가가 해야 할 여러 가지 역할이 있고 기업은 기업의 역할이 있고 그런 것이겠죠. 삼성이라는 기업이 해외에 나가서도 벌지만 결국 국민을 상대로 해서도 번다면 그 막대한 영업이익 속에는 자기들이 해야 될 사회 책임이 들어 있는 거잖아요. 장애인 한 사람을 고용하면서,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고용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것은 영업 이익을 줄이면 되는 것 아니에요?
동의해요. 단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선, 말씀하신 기업의 사회 책임 부분이 분명히 필요하죠. 기업 측면에서는 장애인을 뽑는 게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고 장애인 단체에서는 장애인 의무고용 같은 지원을 요구하잖아요. 공무원 같은 경우도 지금 장애인을 뽑으면 그를 보조하는 사람을 같이 고용하기로 되어 있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기업이나 공공 부문에서 사회 책임 역할을 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이런 차원이 있습니다. 단순히 사회적인 이익 환원이나 그런 측면에서 ‘감수’하고 해야 된다는 논리가 아니라 장애인 개개인의 능력으로 충분히 (감당)될 수 있다는 것을 편견 없이 볼 필요가 있어요. 많은 장애인 분들을 만나보면 그렇게 ‘효율성 저해에 대한 우려’를 감수하지 않아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장애가 있으니 당연히 (능력이) 떨어지리라는 선입견으로 뽑지 않는다는 것이죠.
-‘장애’라는 타이틀 때문에 대개 능력을 평가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얘기죠?
네. 제가 만난 중증 여성 한 분이 지금 어느 사립대 박사과정에 계세요. 장애 1급으로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분이에요. 그 분은 수급권을 포기하고서라도 자기가 사회에 참여해서 사회에서 노동하는 존재로 살고 싶다고 하세요. 그런데 상담심리 쪽 전공을 살려서 일하려고 하는데 언어 장애가 걸림돌이 되는 거예요. 언어장애가 정말 심하신 분들은 저도 못 알아듣는데 그분은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예요. 하고 싶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에서 박사과정까지 해도 사회에 나가려고 하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거죠. 저는 그분이 전화상담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혼자서 영상도 찍으시고요. 그런데 자본주 입장은 다른 거죠. 조금이라도 하자가 보이면 그 하자 때문에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냥 수급권에 의지해서 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장애인의 능력을 일정비율 써 준다는 ‘복지’ 차원에서의 접근이 아니라 능력 그 자체로 평가할 수 있는 사회적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약간 헷갈려지는 문제가 있는데요. 출신성분에 따라서, 그러니까 자본을 가지고 있는 부모를 만난 사람이나 능력이 아주 출중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해낼 것 아니에요.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냐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 텐데요.
제가 이야기하는 ‘능력’이라는 것은 꼭 대단한 수준이나 전문 분야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조금 전에 예를 들어 이야기했던 사람들이나 제가 만나고 들어온 장애인 분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그것을 자본주의 선입견 때문에 정당하게 평가 받지 못하는 풍토가 있다는 거죠. 물론 일을 전혀 못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억지로 노동권을 줘서 일을 시키자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을 안 하고도 살 수 있는 권리가 충분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밥 먹기도 힘든 사람들에게 노동권을 줘야 된다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고,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이지만 장애인 중에서도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잖아요. 충분히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예 못 한다고 생각하면서 기피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장애인의 노동권을 이야기 할 때 구별해서 접근해야겠네요. 방금 이야기처럼 일반인에 비해 업무수행 능력이나 기대치 같은 게 차이가 없는데 장애인이기 때문에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게 있겠고요. 두 번째는, 일반인에 비해서 능력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아도 장애로 인해 추가적인 비용이 들어가야 할 때, 즉 활동보조인이 필요할 때가 여기에 해당하겠네요. 그런 영역에 대한 지원이 보완돼야 한다는 게 있겠고요. 셋째로는, 장애로 인해 업무효율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겠죠. 사회적 기업 같은 데에서 일하고 있는 장애인 분들을 보면 단순노동 등 기능 측면에서 떨어지잖아요. 그런 상황에도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우리 사회 자체에 인간적인 시스템, 더불어 사는 시스템, 그런 차원에서 장애 또는 ‘다름’에 대한 배려나 보완의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네요. 이들 각각이 같이 가야 하는 문제는 아닌 것 같고요. 여기까지가 소위 ‘일하고 싶어하는’ 장애인들의 영역이라면 일하고 싶지 않은, 일할 수 없는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이들에게 생존할 수 있는 역량을 책임져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고요. 그러고 나서야 청년의 고민 같은 게 시작되는 거겠죠?
네. 장애를 가진 사람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던 생존의 문제나, 취업 자립 같은 영역에서, 잘 정리해주셨듯이 제도적 지원에 대한 개별적이고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고요. ‘청년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게 바탕이 돼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같이 논의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청년 이슈로 장애인 문제에 접근하기엔 기본적인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은 단계라고 봐야겠죠.
Chp. 4 –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
취업 수난기, 그리고 장애를 장애라 말하지 못하던 시절
<열 살은 어려 보이지 않나요?>
-현진 씨를 통해서 장애인 얘기를 듣다 보니까 현진 씨 얘기를 조금 더 듣고 싶은데요. 비마이너에서 기자를 하다가 왜 그만두신 거예요?
몸이 안 좋기도 했고요. 기자 일 하는 것 자체는 되게 좋았는데 야근을 많이 해야 되고 주말에도 나가야 되고, 그런데 제 몸이 그걸 못 견디는 거예요. 처음 1년간은 야근해도 너무 재미있고 뭘 해도 다 재미있었는데 정말 몸이 못 버티니까 조금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돼서 그만뒀어요. 기자 일 자체는 제 친구도 그렇고 제 적성에 되게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는데 몸이 못 견딘 거죠.
-그만두시고 지금은 어떻게 지내세요?
쉬다가 지금은 계속 시민단체에 이력서 쓰고 있어요. 이력서 쓰고 면접 보고 이력서 쓰고 면접 보고…
-어떤 시민단체요?
그냥 계속 공고 올라오는 것 보고 썼어요. 주로 환경단체나 인권단체 쪽으로 쓰고 있습니다. 서류는 계속 통과하는데 면접 가서 계속 떨어지기 때문에 약간 절망하고 있어요.
-왜 떨어져요?
워낙 사람들도 많이 오고… 그리고 제가 시민단체 경력이 2년밖에 안 되는 거잖아요. 그 전에는 계속 학원 강사나 과외, 기간제 교사로 일했었고요. 그리고 나이 같은 것을 안 본다고 해도 뽑기에는 제 나이가 너무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런 여러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어쨌든 사람이 자기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열등감이 없을 수가 없으니까 내가 장애가 있어서 꺼려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조금 하고 있죠.
-장애가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장애가 있으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뇌병변 장애 5급입니다. 일종의 뇌성마비라고 보시면 됩니다. 뇌병변 장애는 거의 선천적이고요. 제가 태어날 때 거꾸로 태어났어요. 머리부터 나와야 되는데 다리부터 나와서 팔이 걸린 거예요. 산소 공급이 안됐죠. 그 때 마비가 돼서 약간의 경증장애, 그러니까 손놀림도 세심한 것은 잘 못해요. 예를 들면 비닐봉지 묶여있는 부분을 잘 못 푼다던가, 아니면 제가 고등학교 때 맨 위 단추를 혼자 못 잠가서 친구들에게 잠가달라고 한다든가 그런 거죠. 걷는 것도 약간 불안정하고 그렇습니다.
-불편하신 부분이 크게 눈에 띄지는 않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스스로 ‘장애’가 있다고 인지하고 계셨나요?
아니요.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뇌병변 장애라는 것을 저도 몰랐어요. 저는 제가 약간 소아마비라고 생각하고 살았고, 저희 어머니도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저의 장애에 대해서 쉬쉬하시고 잘 얘기해주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저는 걷는 것만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발음 문제나 그런 게 심각하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그래서 조금 평이하게 자랐던 것 같은데 나중에 저의 장애를 깨닫고 나서는 많이 혼란스러웠죠.
-언제 알게 되신 거예요?
대학 졸업하고 학원 강사 하면서요. 원래 대학 다닐 때도 계속 아무 생각 없이 다니다가 임용고시 공부하면서 알바 개념으로 학원 강사로 있었는데 그때 발음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됐죠. 그러면서 저의 장애 문제가 다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마비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고요. 아주 뒤늦게 안 거죠. 어렸을 때 알았으면 더 위축되고 학창 생활을 잘 못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저는 어렸을 때 그냥 너무 명랑하게 자랐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는 애들이 다리병신이라고 놀려서 많이 힘든 적도 있었지만….
-지금 거동이 불편하세요?
지금은 또 괜찮은데 어렸을 땐 더 다리를 많이 절었거든요.
-어느 다리를요?
오른 쪽이라고 알고 있는데 특별히 그렇게 어느 쪽이라는 인식도 없었어요. 어렸을 때는 아무런 인식도 없이 초등학교에 들어갔죠.
-그런데 왜 다리병신이라고 놀렸어요?
잘 못 걸으니까… 다리를 절으니까… 애들이 다리병신이라고 놀려서 그것 때문에 사실 초등학교 때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친구가 거의 없는 그런 시절이었어요. 다리 때문에 놀림을 받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제 성격이 굉장히 많이 활발해졌죠. 주변 친구들도 다 커서 그런지 장애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중고등학교 때나 대학 때나 아주 명랑하게 학창 생활을 잘 했어요. 아무 문제 없이… 그런데 취업하면서 발음 문제도 그렇고 장애에 대해 인식하게 되면서 그 점이 조금 힘들었죠.
-학원에서 강사 일자리를 구하면서 처음으로 본인의 장애를 제대로 인식하게 됐다는 거죠?
네. 학원에서 일할 때 발음 얘기도 잠깐 나왔고요. 그 다음에 제가 기간제 교사로 중학교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때도 약간 발음 얘기가 나오기도 했고 여러가지로… 사실 발음 문제를 떠나서 학교 붕괴가 되게 심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어쨌든 카리스마 있는 선생님들이 딱 잡으면 수업이 되는데 제가 그게 안 되니까 여러 가지로 힘들었어요.
-학교 분위기가 험한 편이었나 보네요.
학교 분위기가 험하기도 했고, 아니면 가장 큰 문제는… 저는 제가 장애인이라는 인식이 별로 없었어요. 되게 경증이어서… 제가 똑바로 걸으려고만 애쓰면 사람들이 나의 장애를 모를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어요. 스스로 장애인이라는 생각도 없이 살았고 장애라는 걸 남한테 보이기도 싫고 교묘하게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아무리 경증이든 뭐든 사람들은 저의 장애를 다 알 수 있었던 거였죠. 그런데도 나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싫었던 거죠.
-어렸을 적 어울렸던 친구들 중에 ‘너의 장애는 어떻다’ 이런 얘기해 준 사람은 없었나요?
제가 나중에 장애인 단체에 들어가서도 느낀 건데, ‘아, 이 사람이 장애인이구나’라고 인식하면서 장애인과 친구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비장애인들끼리 친구가 되는 것과 똑같은 식으로 친구가 될 뿐이죠. 그리고 이미 저와 친구가 되면 ‘너의 장애는 어떻다’ 이렇게 이야기해 주는 사람은 없죠. 오히려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아, 어디가 뭐 불편하신가요?’라고 한다거나 ‘발음이 원래 조금 그러신가요?’라고 얘기했을 때 ‘아, 내가 장애인이고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보는구나’라고 인식하면서 상처를 받는 거죠. 평소에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같이 놀면서 ‘너 장애가…’ 이렇게 얘기하지는 않죠.
-요새 학교 분위기를 생각하면 나와는 다르다고 놀리거나 따돌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중·고등학생 때 거의 그렇지 않았다니 뜻밖이에요. 제 친구 중에 청각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친구 사귀는 것이나 학교 생활을 꽤 힘들어 했었거든요.
저도 고등학교 친구 중에 청각 장애인이 있었어요. 그 때는 친한 편은 아니어서 잘 몰랐는데 성인이 된 후에 그 친구가 ‘현진이는 저렇게 명랑하게 학교 생활을 잘 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우울해 하고 그러냐’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는 ‘어쨌든 현진이는 경증장애인이고 쟤가 뭐 의사소통에 불편을 겪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나는 안 들리고 그러니까…’라고 대답했고요. 경증장애와 중증장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장애인 안에서도 다시 계급이 나뉜다고 얘기했었죠. 상체를 얼마나 잘 쓰느냐, 언어장애가 있느냐 없느냐 등등으로 다시 장애인 내에서도 계급이 갈린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런 것처럼 사실 고등학교 때 그 청각 장애인 친구가 보기에 저는 어쨌든 아무 문제가 없는, 그래서 저렇게 더 활발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 친구는 귀가 안 들리고 여러 가지 면에서 상대적으로 주눅들 수밖에 없었는데 저는 사실은…. 중학교 1학년 때 제가 우연히 부반장이 된 적이 있었어요.
-공부를 잘하셨구나?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처음에는 애들이 저를 약간 무시하기도 했죠. 그래도 공부를 잘하는 편에는 속했기 때문에 애들이 조금은 저를 잘 대해준 것은 아닌가 생각해요. 사실 학창시절의 공부라는 게 약간 계급의 문제를 반영하는 거잖아요. 등수가 계급일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인지 어쨌든 학창시절에는 제가 스스로도 장애를 인식하지 못했고, 애들도 특별히 저의 장애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 남자애들이 놀린 것 말고는 특별히 무시당했다거나 그런 적은 없었어요.
-스스로 처음 장애라는 문제를 마주해야만 했던 게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 학원 강사로 일하던 취업 시기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임용고시는 왜 그만두게 된 거에요?
기간제 교사로 학교로 들어가서 ‘아, 내가 교사로서 되게 부족하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제 친구가 그때 저에게 임용고시를 그만두라고 하면서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단순히 애들을 다루기 힘든 거면 네가 교사가 되고 나서 그런 문제들을 충분히 다른 교사들과 나누면서 풀어갈 수 있지만 문제는 네가 지금 열등감이 너무 심하다는 점이다. 발음이 안 좋고, 그래서 애들한테 뭘 못하고 그런 게 본인의 열등감으로 자리 잡은 것인데 그것은 교사가 되고 나서도 동료 교사와 풀 수 없는 문제다. 이렇게 네가 스스로의 장애로 열등감을 가지기 시작하면 교사가 돼서도 애들을 잘 다룰 수 없고, 그렇다면 그만둬라." 그런 얘기를 나눈 끝에 3년간 하던 임용고시를 그만 두기로 결정했어요. 그때 너무 우울증이 심하게 왔어요. 아, 왜 사람들이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지 알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때 종교도 갖게 되고… 어쨌든 그러면서 시선을 돌려서 그냥 과외 강사를 하고 그러면서 살다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비마이너 신문기자 공고가 떠서 가게 된 거죠.
-장애를 자각하고 인정하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요?
경증장애인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물론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얘기해주시지 않았던 까닭도 있지만 스스로가 ‘내가 이 정도만 해도 사람들이 내 장애를 모를 거야’라는 착각 속에 빠져있었죠. 그런데 한 번은 친구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어요.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던 친구와 연애 상담을 하면서 제가 그랬거든요. "너 (외모가) 괜찮은데 왜 그러냐." 그랬더니 걔가 막 울면서 하는 말이 "너는 티가 나니까 괜찮지만 난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남들이 (이런 콤플렉스를) 이해하지 못 한다"는 거예요. 큰 충격이었어요.
-생각해왔던 것과 다르게 본인의 장애가 티가 나는 수준이라고 이야기를 들은 것이라고 느껴서 충격이었던 걸까요?
그런 거죠. 저도 ‘중증장애인은 겉보기에 확 티가 나니 상관없지만 나는 숨기면 되니까 내가 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잘 숨겨지지 않았을 때 힘들었던 거거든요. 그 때 들었던 게, 그 친구 입장에서는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그 장애가 티가 나니까 그것을 숨기고 말고 할 것 없이 살 수 있는 반면, 나와 달리 비장애인인 자기가 가진 외모 콤플렉스는 쉽게 이해 받지 못 한다는 얘기였어요. 저는 그 얘기를 듣고 여러 가지로 충격을 받은 거죠. 일단 "너는 티가 나니까" 라는 말이 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요.
-그 친구는 ‘너는 완전히 다른 리그니까…’라는 뜻으로 얘기한 거였군요.
‘너는 어쨌든 남들이 봤을 때 장애인인 것을 아니까 네가 특별히 힘들다고 말해도 사람들이 이해하지만 자기의 외모 콤플렉스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였죠. 어쨌든 저는 계속 그렇게 스스로 인정하지 못 했던 거예요. 숨기면 된다고 생각했고 그러면 남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했죠. 그걸 제대로 인지하게 되면서는 콤플렉스가 너무 심해서 심지어는 한때 대인기피증이 있었고요.
-장애를 회피하고 부정하고 살아오다가 구직하면서 그걸 직시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뒤늦게 왔던 거네요. 그래서 더 괴로웠던 거고…
비장애인분들과 얘기하다가 못 알아들어서 "네?"라면서 되물을 수 있잖아요. 그럴 때에도 저는 그냥 확 주눅이 들면서 ‘내가 발음이 안 좋아서 상대방이 이러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때부터 몸이 굳고 말을 못하는 거예요. 언젠가 제가 아는 선배도 너무 신경증이 심해져서 자기가 눈 깜박이는 횟수를 세고 싶다거나 숨 쉬는 것을 세고 싶다거나 그렇게 얘기했는데 저는 스스로 제 발음을 겸열하면서 몸이 더 굳어졌고 말이 더 안 나오게 된 거죠. 심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티비에서 성공한 장애인이 나오면 그게 너무 꼴보기 싫었어요. 마치 사회가 ‘이렇게 힘든 사람도 사는데 너는 왜 못 살아’ 이런 식으로 윽박지르는 느낌이어서요.
-사실 이 정도의 경증 장애인데도 불구하고 취업이나 자립 문제에서 자기 부정이나 배제의 경험을 오랫동안 해오셨다는 것을 보면 중증 장애인의 삶은 어떨까 싶어요. 장애로 인한 문제들 때문에 본인이 원래 상정했던 직업경로에서 이탈하신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현진씨를 보면 공부도 정상적으로 하셨고 좋은 대학 나오셨고 예쁘시잖아요. 미모도 있으시고 아직 젊고요. 그런데도 본인은 되게 힘들어 하잖아요.
사실 열등감이 없을 수가 없죠. 그래도 장애인 단체에 들어와서 제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거의 인정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인정하지 못했던 거죠.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비장애인처럼 보일 수 있는데 왜 남들이 나한테 (그럴까)’ 라고 생각했었던 거고요. 그래서 누군가 갑자기 "어디 불편하세요?"라고 말하면 확 그게 상처로 다가오고 그랬던 거죠. 장애인단체에 들어가면서부터 내가 장애인인 것을 말할 수가 있게 된 거고요.
-지금은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사람을 대할 때라든지 어느 정도 극복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저의 장애에 대해서 이렇게 편하게 얘기하시는 것은 여기가 인터뷰장소이니까 가능한 거지, 아무리 시민사회 단체 안이나 소위 좌파적 단체 장으로 가더라도 다시 그 안에서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인상 깊게 읽었던 칼럼이나 글들을 썼던 장애인 칼럼니스트 원영 씨도 말한 거지만 평생 이것은 내가 어디 가서든 ‘장애인인데’ 이러면서 아무렇지 않게 될 수가 없어요. 예전에는 가리기에 급급했다면 이제는 내가 인정하고 ‘장애인이구나’ 이러면서 주체적인 장애인이 됐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게 아닌 거예요. 원영 씨가 책에서 얘기한 것을 보고 공감했는데 그분은 아예 그런 상태를 전제하시더라고요. 이것은 평생 자기 열등감으로 가지고 가야 할 부분이라고요.
-겉으로 보기에는 참 밝은 성격에 친화력도 있으신데요. 무엇보다 중증 장애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훨씬 나은 상황인데도 사회에 의해 거부당하는 과정에 직면해서 장애를 비로소 자인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경증이든 중증이든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현실이 얼마나 각박한 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죠. 제가 임용고시 그만두고 열등감을 얘기했을 때 사람들이 위로 차 이런 얘기를 했어요. "너보다 더 심한 사람들도 있는데 뭐…" 그런데 그런 말로 절대 가려질 수 없는 게 있어요. ‘중증 장애인분들은 더 힘든데 나는 이 정도니까’ 라고 생각해서는 극복될 수 없는, 말하자면 실존의 영역이 끝까지 존재하는 거고요. 이것은 아마 평생 가져가야 할 짐이 아닐까요.
Epilogue 인간답게 살고 싶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조금 더 멀리 보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해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멀리 봤을 때 시민사회단체는 거쳐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서울을 떠나서 지방에 내려가서 그냥 조용히 살고 싶은 바람이 있죠.
-이렇게 활달하시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귀촌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어요?
물론 제 주변에서도 그런 얘기를 해요. "너는 시골 가서 못살 거다"라고요. 그런데 서울이라는 도시가 주는 여러 가지가 너무 기를 빼앗아간고 할까? 힘들어서요.
-그렇죠. 기가 세야 살죠.
고민 중이에요. 제주도도 가봤고 며칠 살아보려고 애썼는데 당장 혼자 못 살 것 같아서 다시 서울에서부터 일자리를 구하고 있기는 한데…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떡해요. 돈을 벌어야 될 것 아니에요.
그런 문제 때문에 당장 귀촌은 못하고 있죠. 그런데 제가 아는 분은 무작정 제주도에 내려갔는데 거기에서 어떻게 인터넷으로 일을 구하셔서 생업을 유지하면서 사시더라고요. 누가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하던데요. 뭔가 저질러 놓으면 따라오는 게 있다고요. 제가 지금 막 저지르지 못하고, 무작정 내려가서 뭘 먹고 살까 하는 생각에 이러고 있긴 한데. (웃음)
-농사하기에 체력이 부치지 않을까요?
기본적으로 몸이 되게 약해서… 그런데 농사가 체력도 체력이지만 상당히 많은 인내심이나 그런 다른 자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웃음) 제가 농사를 해보고 느꼈는데 그게 단순히 체력의 문제를 떠나서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있어요. 물하고 여러 가지 조건들을 다 맞췄는데 안 되기도 하고 그렇죠. 얼마전에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서 나온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라는 만화책을 보면 서울에서 일을 받아다가 하면서 거기에서는 먹고 살 만큼 농사를 지어서 사는 내용이 나오거든요. 그것을 보면서도 생각했지만 저도 아예 농사로만 먹고 살기에는 설사 체력이 뒷받침 되더라도 농업 자체가 신경 쓸 문제가 많아서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조금 달리 생각해서 도시농업이나 그런 데에는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벗어나서 평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거군요. 사실 먼 옛날을 생각하면 도시든 어디든 장애인들은 생존하기 어려웠잖요. 그냥 도태되고 말았죠. 사회가 장애인들을 배려하고 지원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지도 않았죠. 어려서부터 그냥 자연적으로 도태되거나, 커서도 사회에서 받아주지를 않고 그랬는데 지금이라고 그게 얼마나 많이 달라졌나 싶어요. 문명 사회의 지표라는 게 결국은 장애인 같은 사회계층도 단순하게 육체적인 기능만을 쓰거나 그런 것에 의지하지 않고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무언가 기능이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발전에 기여하든지 또는 구성원으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졌는가를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지금 사회 시스템은 참 그렇지가 않죠.
그렇죠. 그런 시스템이 아니고 그냥 보호하거나 아니면 아예 눈앞에 보이지 않는 ‘시설’이라는 부분에 쳐 넣어서 ‘관리’를 하죠.
-그건 사실 수용의 개념에 가까운 거잖아요.
‘장애, 비장애’라는 틀로 나누고는 아주 다른 존재로 봐버리니까요. ‘장애우’라는 명칭에서도 느껴지듯이 그냥 ‘다른’ 존재로 보는 거죠. 저도 처음에 장애인 단체에 가서는 중증장애인 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분들을 티비 속에서만 봤으니까요. 그런데 나중에는 똑같이 대하게 됐거든요. 그러니까 더 많은 장애인 분들이 지역사회로 나와야 된다고 생각해요. 더 많이 눈앞에 보여야 음식점에서도 경사로를 만들고 뭐도 하고 그럴 것 아니에요. 그런데 이렇게 너무 분리돼서 중증장애인들은 티비 속에서나 가끔 보이는 존재가 돼버리면 눈앞에서 당장 안 보이기 때문에 경사로를 만들거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거나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죠.
-정리하자면, 조금 개념은 다르지만 일종의 사회적 경제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장애인 문제에 접근하면서 지금은 ‘효율적인’, ‘생산적인’ 이런 개념으로 봐왔다면 앞으로는 느리지만 배려하는 방식으로 전체를 포괄하는 그런 사회를 염두에 두면서 그 과정에서 새로운 방식의 경제가 생길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릴 때라고 볼 수 있겠죠.
동의해요. 단 거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게 단순히 장애인을 배려하는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 계층 전반을 배려하는 것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장애인을 배려하면 노인과 같은 교통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거잖아요. 예를 들어 경사로도 꼭 장애인을 위한 것만은 아니고, 지하철 엘리베이터도 임산부나 어린이, 노약자가 다 이용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장애인만을 우선 배려한다는 측면이 아니라 그렇게 됨으로써 사회적 약자 전반을 같이 포용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결국 문명 수준의 지표가 사회적 약자를 포함할 수 있는 사회냐 아니냐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사회적 약자가 격리나 수용돼 있거나 혹은 차별 받는다면 결국 옛날 정글 사회와 똑 같은 거죠. 그런 것들이 언제 개선이 될까요. (허탈한 웃음) 그런 것들이 개선돼도 아까 현진 씨가 말했던 장애로 인한 배제의 경험이나 어쩔 수 없이 직면해야 하는 열등감은 결국 개인의 문제일 수 밖에 없겠죠?
네. 개인의 문제이지만 그런 개인의 삶을 개인 삶대로 살면서도 역시 연대하는 삶이 필요하겠죠. 목소리를 같이 내면서 바꿔나가되 개개인도 다시 그 안에서 자신만의 삶을 사는 방식이 가능해야 하는 거죠.
인터뷰를 마치고
계속해서 입사지원과 면접, 탈락, 그리고 멘붕(멘탈붕괴) 사이를 오가고 있다던 박현진 씨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원하는 시민단체에 합격해서 첫 출근을 한다는 것! 환경 분야 시민단체에서 새 출발하게 된 박 씨에게 격한 축하의 메시지를 보낸다. 얼마 뒤 환경단체 활동가로서 전투력을 불사르는 트윗이 올라왔다.
“아앜 내일 4대강 찬성의원 낙선운동 기자회견 가기 위해 판넬을 만들었는데 너무 못만들어서 엉성하고 유치해 엉엉~ 난 진짜 손재주가 꽝이니 어쩔수 없다. 이런 활동가도 있는 거라고~~~~!!!”
<나 이뻐용?>
저주무당 유정보살 (상담문의 sunmudang4444@gam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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