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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두 얼굴

입력 2012.04.08 21:13

며칠 전 평소 알고 지내던 하이마트 김모 부사장과 전화통화가 됐다. 그는 검찰 수사를 받는 중이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하이마트 선종구 회장의 비리 혐의를 캐고 있다. 김 부사장은 “검찰이 선 회장의 비리를 내놓으라고 난리다. 뭘 알아야 내놓을 게 아니냐. 답답하다”고 했다. 또 “검찰은 내가 알고도 숨기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 아무리 모른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잘못하면 내가 괘씸죄로 걸리게 생겼다”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곧바로 구속됐다.

이 일이 있은 지 며칠 뒤 하이마트 협력사 사장 박모씨가 투신 자살했다. 대검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은 다음날인 4일 아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박 사장은 6차례 검찰에 불려갔다고 한다. 매일같이 10시간 넘게 조사를 받았다. 박 사장은 참고인 신분이었다. 그는 검찰 수사 과정에 자신의 죄와 관계없는 선 회장의 비리를 자백하도록 강요받았다. 수사 검사는 “당신 같으면 10년간 아무런 배경도 없이 (하이마트와) 거래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느냐.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밝혀내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숨지기 직전 친구와 만나 고통을 토로했다. 박 사장은 “힘들어서 못살겠다. (없는 사실을) 했다고 그럴까”라고 했다. 그는 “복학을 앞둔 아들까지 불러 조사하겠다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그는 친구에게 “차라리 내가 죽으면 모든 게 끝나지 않겠느냐”고 했다. 박 사장은 결국 이 같은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결국 생사람을 잡은 꼴이다.

[아침을 열며]검찰의 두 얼굴

대검 중수부는 선 회장이 회사 돈을 빼돌려 해외에 골프장·고급주택을 사들이고 회사 자금을 유용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하이마트 수사는 초기부터 의구심이 많았다. 아무리 재벌개혁 분위기라고 하지만 일개 중견기업인 하이마트를 대검 중수부가 직접 나서 수사하는 게 적절하냐는 얘기도 많았다. 이런 와중에 영장도 기각돼 검찰은 망신을 자초했다. 선 회장을 엮어 넣을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그동안 숱하게 강조해온 ‘스마트 수사’도 이쯤 되면 검찰에는 사치일 수 있다. 검찰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과욕이 빚은 결과는 참혹하다.

대검 중수부 길 건너편에 있는 서울중앙지검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요즘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 및 증거인멸 조사로 시끄럽다. 이번 수사는 2010년 부실 수사에 이은 ‘재탕 수사’다.

검찰은 당시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민간인 사찰을 언론에 폭로하자 수사를 벌였지만 총리실 직원만 기소한 채 수사를 종결했다. 당시 청와대 몸통설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외면했다. 이번에 구속된 청와대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과 최종석 전 행정관은 당시에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청사가 아닌 서울시내 호텔에서 방문조사가 이뤄진 것만 봐도 검찰의 수사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재수사에 착수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이 전 비서관과 최 전 행정관을 구속한 뒤 사찰의 배후를 캐고 있다.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이번 사건의 몸통으로 청와대를 지목했다. 그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증거인멸을 주도하고 축소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돼 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다. 민주통합당은 물론 새누리당도 권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권 장관 주변에서는 “이영호 비서관의 전횡과 비선라인의 문제를 바로잡은 사람을 죄인으로 모는 것에 본인이 억울해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권 장관이 민정수석 시절 막강 파워를 가진 이 비서관도 각을 세웠다는 얘기는 정설로 돼 있다. 그러나 권 장관을 둘러싼 의혹은 민간인 사찰이 아닌 증거인멸 쪽이다. 민간인 사찰은 몰라도 증거인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 사정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수사의 하이라이트는 입막음 대가로 건넨 돈의 출처다. 장 전 주무관에게 건넨 돈만 1억1000만원이다. 청와대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들어간 총리실 직원만 7명이다. 변호사 비용은 물론 생활비조로 건네진 돈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 그 돈의 출처에 따라 이명박 정권의 도덕성이 판가름난다.

문제는 수사 의지다. 채동욱 대검 차장은 파장이 커지자 “사즉생의 각오로 수사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번 재수사는 시작부터 검찰의 수사 의지에 의문이 제기됐다. 독립적인 특임검사를 임명치 않고 검찰 보고라인을 거치도록 돼 있는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수사팀 내부에서는 벌써 앓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관련자들이 입을 열지 않는다. 이런저런 핑계로 수사에 비협조적이다”는 것이다. 야당에서는 “검찰 수뇌부의 수사 의지가 전혀 없다. 수사팀 내부에서도 반발할 정도”라고 말했다.

옆집인 대검 중수부에서 하고 있는 하이마트 수사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하이마트 선종구 회장을 잡겠다는 수사 의지의 반만 보여도 이런 소리가 나올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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