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인의 결혼…한넬로레 슐라퍼 지음·김선형 옮김 | 문예중앙 | 328쪽 | 1만5000원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임종할 때 그의 곁에는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그의 아내 마리안네 베버와 내연녀 엘제 야페였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친구이자 베버의 제자였다. 이 기묘한 삼각관계는 사회 통념상 불순하고 유지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삼각관계는 베버가 죽어서야 끝이 났다.
마리안네는 19세기 후반 독일 대학들이 여성에게 문을 열 때 입학했다.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성 평등, 자유 등에 대한 교양 세례를 받은 첫 세대이다. 그는 학문적 동반자 관계를 약속받으며 스승 베버와 결혼했다. 베버 부부는 가정이나 사회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지킬 것을 주변에 선언했다. 평등한 관계에는 성생활의 자유도 포함됐다. 이로써 외도는 이 부부에게 무의미한 말이 됐다.
![[책과 삶]베버와 사르트르, 제도·관습을 깨는 결혼을 꿈꾸다](https://img.khan.co.kr/news/2012/05/11/l_2012051201001303700112091.jpg)
결국 베버는 또 다른 여제자의 유혹을 받아들여 내연관계를 갖는다.
저자는 이들의 결합을 ‘지성인의 결혼’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지성인의 결혼이란 지적인 일에 종사하는 커플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짝과 결혼 형식을 자유롭게 결정하고 동반자적 관계를 내포한다. 지성인의 결혼은 평등한 관계와 자유의지를 주축으로 한다. 이는 가부장제로 대별되는 기존의 전통적 결혼관념을 뒤집는다. 제도나 관습을 깨는 혁명적 시도이다. 저자는 이를 결혼의 근대적 실험으로 해석한다. 베버 부부는 이 근대적 실험의 1호인 셈이다.
하지만 베버 부부의 실험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베버는 성생활 면에서 윤리와 에로티시즘 사이에서 고뇌했고 정신분열 증세까지 보였다. 전위를 걸었지만 전통의 그림자를 완전히 떨치지 못했던 것이다.
지성인의 결혼 표본은 사르트르·보부아르 커플이다. 베버 부부의 실험이 하이델베르크 지식인 사회로만 전파되었다면 사르트르 커플의 실험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정치적인 이슈로도 발전했다. 파급력 못지않게 사르트르 커플은 성에 대한 태도 측면에서도 베버 부부보다 훨씬 근대적이었고 가치 전복적이었다. 사르트르 커플은 근대적 결혼 실험을 베버 부부보다 더 극한으로 몰아갔다. 사르트르 커플에게도 베버 부부와 유사한 삼각관계가 있었다. 이들은 이 관계를 ‘트리오’라 불렀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삼각관계도 하나의 실험으로 받아들였다.
이 같은 실험은 19세기 후반부터 소설에도 자주 등장한다. 저자는 그 가운데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만큼 지성인의 결혼에 대한 모델을 잘 제시한 작품은 없다고 말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의 여주인공 베라는 옷가게를 운영하는 소시민이다. 저자는 지성인의 결혼 개념이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체르니셰프스키는 보여주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