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대통령의 탄생이냐, 군부의 재집권이냐.
지난해 2월 권좌에서 물러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후임자를 뽑는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 결과 발표를 앞두고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이집트 최대 이슬람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의 모하메드 무르시 후보(61)와 옛 무바라크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는 아메드 샤피크 후보(71) 진영은 각각 자신의 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가 발표된 후에도 개표 과정의 투명성과 부정선거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집트 선거관리위원회는 24일 오후 대통령 당선자를 공식 발표한다. 당초 선관위는 지난 16~17일 치른 결선투표 결과를 21일 공개하겠다고 했으나 일정을 연기했다. 두 후보 측이 신고한 부정선거 의혹 400여건을 조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이유였다. 내무부 관계자는 AFP통신에 “결과 발표 시에 일어날 수 있는 소요를 방지하기 위해 대규모 치안 계획을 수립했다”고 말했다.
선관위 발표를 앞두고 두 후보 측은 모두 자신이 당선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을 대표하는 무르시 캠프는 98% 개표 결과 무르시가 51.8%를 득표했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무바라크 정권 말기에 총리를 지냈던 샤피크 캠프도 자신이 51.5%를 얻어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이집트 일간 알 아흐람 인터넷판은 선관위가 샤피크의 승리를 선언할 것이라고 22일 보도했다. 샤피크 후보는 공군 장교 출신으로, 현재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는 군최고위원회가 선호하는 인물이다. 무바라크 정권에 속했던 인사라 대선 출마 자격이 없다는 논란이 있었으나 법원은 지난 14일 샤피크의 출마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같은 날 헌법재판소는 무슬림형제단이 장악하고 있던 의회 해산을 결정했고, 군부는 다음날 결선투표를 하루 앞두고 의회를 해산했다. 군부가 샤피크를 대통령으로 만든 뒤 막후에서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정지 작업을 했다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무르시가 승리했기 때문에 선관위가 당선자 발표를 연기했다는 추측도 있다. BBC방송은 군최고위원회가 ‘출구 전략’을 세울 시간을 벌기 위해 당선자 발표를 미루고 무슬림형제단과 밀실 협상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전했다. 보복이 두려운 군부가 무슬림형제단 측에 기소면제권을 달라고 요구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슬림형제단 관계자는 “군최고위원회와 만나긴 했지만 의회 해산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양측 간에 협상은 없었다”고 말했다.
선관위가 어느 후보를 승자로 발표하든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무르시 지지자들은 샤피크가 대통령으로 뽑힌다면 타흐리르 광장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를 벌이겠다고 예고해왔다. 샤피크 당선은 지난해 2월 ‘아랍의 봄’ 시위로 무너졌던 구체제의 귀환을 뜻하기 때문이다.
무르시가 당선된다고 해도 군부가 권력을 민정에 이양하고 물러나지 않는다면 허울뿐인 대통령이 될 공산이 크다.
군부는 의회를 해산한 뒤 임시헌법을 공포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했다. 새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군사와 관련된 모든 업무는 군최고위원회가 맡는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20일 “군부는 권력을 승자에게 이양한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 걸린 군부의 이해관계가 워낙 큰 터라 미국이 보낸 경고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고 BBC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