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오지를 찾아간 시인들, 숨어든 삶 사이를 마음으로 거닐다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 책과 삶

오지를 찾아간 시인들, 숨어든 삶 사이를 마음으로 거닐다

입력 2012.06.29 20:05

▲시인의 오지 기행-고요로 들다
박후기 외 지음 | 문학세계사 | 331쪽 | 1만4000원

강원도 살둔, 치악산 금대계곡, 서해 세어도, 거제 대포마을, 괴산 중말…. 이른바 오지라는 곳이다. 요즘 세상에 오지가 얼마나 되겠나 싶지만 여전히 꼭꼭 숨은 땅이 드문드문 있다.

문명의 발길로부터, 도시인의 호기심으로부터 숨은 오지를 찾아 시인들이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섰다. 이 책은 민통선에서 제주도까지 오지 23곳에 대한 기행문이다.

TV 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2일>에 등장하는 바람에 많이 알려진 만재도. 손택수가 만재도를 찾았을 때만 해도 외지인의 손이 안 탄 섬이었다. 신안군에서 바닷길로 가장 멀어 ‘먼뎃섬’이라 불리는 만재도는 고요의 섬이다. 손택수는 적막한 해변에 앉아 내면을 깊이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고요함의 가치를 재발견한다. 그는 생애 단 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만재도에 있겠다고 말한다.

[책과 삶]오지를 찾아간 시인들, 숨어든 삶 사이를 마음으로 거닐다

이문재에게 강원도 단임골은 ‘마음의 오지’다. 그야말로 ‘혼자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 마음의 오지란다. 이문재처럼 서울살이에 지치고 갑자기 푸른 것이 미치도록 보고 싶은 사람은 마음의 오지 하나쯤 간직하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제주도에도 오지 마을이 있을까. 이대흠은 제주도에서 오지 마을을 찾으려 한 달 동안 헤맸다. 그러다 한라산 중턱에서 입석리를 만났다. 세 가구가 전부인 마을.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 사투리를 쓰는 노인들.

오지란 낯설면서 정이 드는 곳이다. 그는 입석리를 ‘팽나무의 여린 잎에 어린 그늘 같은 고요’로 표현했다. 이대흠은 힘들게 찾은 입석리에 머물수록 자꾸 숨기고 싶어졌다고 말한다.

사람과 멀어지기 위해 떠난 오지 여행. 하지만 시인들의 오지 기행은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오지 마을 주민들의 색다른 삶 이야기는 도시인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이윤학은 오지 사람을 ‘왕따’로 표현했다. 왕따이기를 자초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가 찾아들어간 치악산 금대계곡에는 6명의 왕따가 살고 있었다. 도시 생활을 접고 제 발로 금대계곡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반면 도회지 사람은 왕따가 되는 걸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그는 왕따가 되지 않으려 애쓸수록 왕따가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느냐고 일침을 놓는다.

거제도 공고지에는 단 한 가구만 산다. 이진우는 공고지를 상식으로 이해가 안되는 지역이라 정의한다. 1969년 자녀들을 이끌고 공고지에 들어온 노부부는 수십년간 계단식 밭을 일구고, 해안가에 몽돌 돌담을 쌓았다.

공고지 3만평은 노부부의 사유지라고 하는데 거제시는 이곳을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로 선정했다. 개인 소유 관광지이지만 입장료 따위는 없는 특이 지역이다. 공고지는 문명과 발전을 거슬러 산 한 가족의 50년 역사가 오롯이 담긴 공간이다. 오지를 이해하려면 거기 사는 사람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와닿는다.

우대식은 부안군 ‘밥섬’에서 강술을 마시는 바다 사내와 고된 노동 자체가 삶인 아낙네들을 만난다. 이종만은 통영 앞바다 두미도에서 ‘바닷가의 바위들처럼 파도와 바람에 꿋꿋하게 맞서면서도 둥글둥글 동화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스케치했다. 이들을 보노라면 섬사람의 삶 자체가 이제는 오지로 남아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지로 향한 시인들은 길 위에서 시를 썼다. 시인들은 발이 아닌 마음으로 오지를 걸었다. 오지에서 노래하는 시는 글맛을 돋우기도 하지만 읽는 이의 몸과 마음을 동하게 만든다.

이 여름 마음의 번화가를 벗어나 고요한 오지로 가자고 손짓하는 것만 같다.

  • AD
  • AD
  • AD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