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이혜승 옮김 | 을유문화사 | 568쪽 | 1만8000원
소설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 귀족 출신으로 나치의 망령을 피해 1940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롤리타>로 유명세를 타기 전까지 그는 미국 대학 강단에서 문학을 강의했다.
이 책은 러시아 소설가들에 대한 나보코프의 강의록을 엮은 것이다. 나보코프의 문학관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책과 삶]‘롤리타’ 작가가 안내하는 19세기 러시아 문학 거장들의 숲](https://img.khan.co.kr/news/2012/07/06/l_2012070701000677200071391.jpg)
나보코프는 19세기 러시아 작가만을 다뤘다. 그는 “한 편의 중세 시대 걸작을 제외하면 러시아 산문은 19세기의 임포라(로마시대 손잡이 달린 항아리) 안에 다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19세기를 러시아 산문의 황금기로 규정했다. 책에서 다룬 고골,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고리키 등이 이 황금기를 일군 작가들이다.
나보코프는 산문의 위대성 차원에서 작가들에게 순위를 매겼다. 1위 톨스토이, 2위 고골, 3위 체호프, 4위 투르게네프 순이다.
그는 톨스토이 글의 호흡이 우리의 맥박과 똑같다고 말한다. 톨스토이의 위대성은 ‘우리의 시간 관념에 딱 들어맞는 시간을 작품에 부여하는 재능’에서 기인한다고 봤다. 톨스토이 작품의 묘미는 흔히 얘기되듯 리얼리티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보코프는 도스토옙스키를 진부하다며 순위에 넣지도 않았다. 가령 ‘인물 묘사’를 따지면 톨스토이는 매 순간마다 몸짓, 표정 하나하나를 포착해 정교하게 그려내는 데 비해 도스토옙스키는 인물의 첫 등장 때만 언급하고 만다. 도스토옙스키는 대신 심리, 내면적 묘사에 치중했다고 한다. 나보코프는 “도스토옙스키의 세계에는 날씨도 없고, 풍경이 있다면 도덕적 풍경뿐”이라고 했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작법은 예술가적 방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도스토옙스키 최고작으로 <분신>을 꼽았다. 예외적으로 정교한 스토리와 운율적 표현이 강하게 녹아 있기 때문이란다.
나보코프는 고골을 4차원 작가로 정의한다. 평범한 세상의 시계와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설명이다. 고골의 작품은 가히 ‘우주 폭발’에 견줄 만한 것인데 이는 3차원 세계의 다른 러시아 소설가에게선 찾을 수 없는 재능이란다. 나보코프는 이를 고골만의 독창성이라 봤다.
고골은 ‘어휘 발명가’인 데 반해 체호프는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 나보코프는 체호프의 문체를 평상복 차림으로 파티에 간 격으로 비유했다. 정교한 묘사엔 서툴렀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체호프는 19세기 러시아의 사회적·심리적 풍광을 절묘하게 그려낸 작가로 평가된다. 그는 러시아를 알려면 가능한 한 체호프를 많이 읽으라고 조언한다.
투르게네프에 대해선 “묘사는 뛰어나지만 스토리텔링은 형편없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투르게네프의 최악이 고리키를 통해 완벽히 재현됐고, 투르게네프의 최선이 체호프를 통해 아름답게 승화됐다”고 적었다.
나보코프는 소설에서 ‘디테일’을 무엇보다 중요시했다. 소설을 읽는 눈도 평생 나비에게 반해 나비를 쫓아다닌 그의 성향과 어딘지 닮았다. 반면 예언자적이고, 도덕적인 메시지에는 흥미를 못 느낀다고 했다. 그는 차르 시대와 사회주의적 소비에트 문학을 혐오했다. 그는 “특정 그룹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게 아니라 작품의 섬세한 디테일을 흡수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다”고 말했다. 그는 푸시킨의 시 ‘핀데몬테의 시에서’를 언급하는데 여기에 그의 문학관이 압축된 듯하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예술과 영감의 창조물 앞에서/ 환희와 감격으로 전율하는 것/ 이것이 행복이다! 이것이 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