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민주주의, ‘국민행복’의 선결조건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민주주의, ‘국민행복’의 선결조건

입력 2012.07.11 21:10

수정 2012.07.11 23:28

펼치기/접기
  • 김종철 | 녹색평론 발행인

여당 대선 후보가 출마를 공식화하면서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선거용임을 감안하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헛소리로 끝나게 될 말이라 할지라도 정치가가 선택하고 사용하는 언어에는 그 자신의 세계관이나 현실인식이 얼마간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차기 집권의 가능성이 높은 유력 후보가 ‘국민의 행복’을 언급한 것은 어쨌든 다행스럽다.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국민의 80%가 불행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절망적 현실을 적어도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김종철의 수하한화]민주주의, ‘국민행복’의 선결조건

그러나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행복’에 진정으로 관심이 있다면, 단지 미래의 일로 약속만 할 게 아니라 집권을 하기 전이라도 지금 당장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자신을 지지하는 확고부동한 유권자를 30% 이상 확보하고 있는 여당 정치지도자는 그 자체로 이미 강력한 권력자이다. 그런데도 이 지도자는 ‘국민의 행복’에 관계된 중대한 현안들에 대해서 늘 침묵하거나 기껏해야 ‘안타깝다’는 모호한 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특이한 정치적 행동을 줄곧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국민의 행복’을 운위한다는 것은 보기에 따라 극히 희극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과 신념이다. 이것은 ‘독재자의 딸’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지금 이 나라 정치엘리트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를 얘기하고 있지만, 그들이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대해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를 극복하고 대중적 빈곤화와 실업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성장보다 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일자리 창출, 복지를 주요정책으로 내세우는 것은 물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문제의 본질이 어디까지나 ‘민주주의’ 그 자체에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제민주화라는 과제는 실제로 경제문제라기보다 정치·사회적인 차원에서 얼마나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실천되느냐에 달린 문제이다. 오늘날 뒤틀린 경제의 핵심문제는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현상으로 요약될 수 있지만, 이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금권정치가 종식되고, 사회정의가 실현되어 ‘작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문제에 대해서 발언할 권리를 회복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답시고 선정을 베풀고자 하는 게 아니다. 올바른 정치는, 요컨대, 민중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넓히는 데 기여하는 노력일 뿐이다.

민주주의란 까다롭고 복잡한 게 아니라 글자 그대로 민중의 자기통치를 뜻한다. 그런 점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어떤 경우에도 근본적인 결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게다가 오늘날 선거에 의해 돌아가는 의회제 정당정치는 심각한 불의 혹은 부조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선거란 어차피 돈과 권력이 판을 좌우하는 게임인 이상, 정당한 대표자를 선출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의제 민주주의하에서 민중이 자신의 의사를 국가정책에 반영시킬 수 있는 여지는 지극히 좁을 수밖에 없다. 지금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온갖 위기의 궁극적인 원인은 결국 이러한 대의제 민주주의가 가진 결함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것은 나라에 따라 민주주의의 질적 수준이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근본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보완장치에 따라 민주주의가 얼마든지 질적으로 높거나 낮은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왜 민주주의가 중요한가? 한마디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살고 싶어 하는 근원적인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기관들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각국의 ‘행복지수’를 보면, 최상위는 항상 덴마크나 스위스다. 안정된 복지국가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우리는 쉽게 추측하지만, 덴마크나 스위스인들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원인이 높은 국민소득이나 빼어난 경관이 아니라 자신들이 향유하는 ‘민주주의’에 있다고 생각한다. 거의 직접민주주의에 근접한 정치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스위스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덴마크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덴마크는 원래 민중의 자치적 협동운동으로 부흥을 이룬 나라이다. 그 전통은 여전히 살아있지만, 오늘날 특히 흥미로운 것은 ‘시민합의회의’라는 제도이다. 1985년에 세계 최초로 창설된 이 제도는 새로운 과학기술을 도입하는 문제를 시민들의 주체적인 참여에 의해 결정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첨단과학기술에 관련된 최종 결정권이 전문가들이나 업계, 정부 당국이 아니라 일반시민들에게 있다는 사상이다. 회의는 먼저 국회의 ‘기술위원회’가 주관하여 전국적 언론을 통해 자원자를 모집한 뒤에 무작위로 15명을 선정한다. 선정된 이들은 대개 주부, 공장노동자, 환경미화원, 샐러리맨 등 평범한 시민들이다. 그들은 주말을 이용하여 몇 차례 준비모임을 거친 다음에 며칠간 전문가들을 불러서 경청, 질의응답의 결과를 근거로 의견을 모아서 보고서를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날 국회의사당에서 일반 방청객과 의원들, 그리고 TV를 통해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고서 작성 경위를 설명하고 답변한다. 그동안 이 회의에서 취급된 주제는 유전자조작식품, 방사선식품조사, 인간게놈계획, 전자신분증명서, 유전자치료 등 다양했다. 시민합의회의의 결론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게 아니어서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지만, 대체로 국가정책은 그 결론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간다.

원래 시민합의회의는 원자력발전 건설 여부를 두고 1980년대 전반기에 치열하게 벌어진 논쟁의 산물이다. 덴마크는 핵분열을 최초로 실험적으로 확인했던 핵물리학자 닐스 보어의 고국이다. 그런데도 1970년대의 석유위기 이후 격렬한 논쟁 끝에 덴마크 시민들은 원전 불가라는 결론을 내렸고, 의회는 그 결정을 따랐다. 그 대신 덴마크는 자연에너지 개발에 전력을 기울여 현재 세계 최대의 풍력발전 수출국가가 되었다. 밥을 제대로 먹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은 밀도 높은 민주주의임이 분명하다.

  • AD
  • AD
  • AD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